5ㆍ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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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 국립5.18 묘지 (참배방법 및 구묘역 , 신묘역)

페이지 정보

등록일
2020-05-07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40

본문

5.18 민주화운동 나라사랑과 민주주의의 성지

국립5.18 민주묘지

국가 유공자의 희생으로 지킨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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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꽃비서에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따라

취해진 계엄군의 광주, 전남 지역 무력진압과 관련

1980년 5월 18일 부터 27일까지 10일간

광주시민과 학생들이 부당한 국가권력에 항거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바로 5.18민주화운동인데요.

오늘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수호하다

희생되신 분들이 영면하고 계신

국립5.18민주묘지를 다녀온 이야기를 할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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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선 가기 전 개인으로 해서 사전

참배신청을 하고 갔답니다.

사전신청을 하고 갈 경우 직원분께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시고, 참배하는 방법과

하는 과정등을 알 수 있어서 더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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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신청을 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도 있긴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사전신청을 해서 방문한게 너무 뜻깊고

좋았던 시간이였습니다!

사전신청은 국립5.18민주묘지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개인/단체 예약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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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객이 오월 영령을 만나기 위해

제일 처음 들어서는 문이 바로 민주의 문 입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마음을 가다듬게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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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5.18민주묘지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되신 분들과 당시 부상을 당하였다가

구금되어 고문과 옥고를 치른 후 사망하신

분들이 안장되어 있는 곳이랍니다.

1994년 부터 시작한 5.18 묘지 성역화사업이

3년만에 완공되었고, 손수레나 청소차에 실려와 5.18

구묘지(광주시립묘지 3묘역)에 묻혀야 했던

분들을 이 곳에 모셔와 안장하였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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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는 안내실이 있고, 안내책자도

준비되어 있는데요. 안내책자를 함께

보면서 둘러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여러나라의 언어로 해설한

책자들도 다 배치가 되어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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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들어가면서 방명록을 작성했는데요.

방명록 문구는 옆에 예시가 있어서

어렵지 않게 적을 수 있었답니다.

꼭 예시가 아니더라도 평소에 자기가

생각했던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마음을

적어도 좋을 것 같아요~!



사전 신청을 해서 안내해주시는 분이

설명을 해주시기 위해 동행을 해주셨고

임을위한 행진곡도 국립5.18민주묘지

전체에 퍼지도록 틀어주셨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면서 들어가니

뭔가 마음이 무거워 지면서 진지한 마음가짐을

갖게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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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항쟁 추모탑 인데요. 높이 40m

의 웅장한 석조탑으로 탑 중앙에 있는건

알을 형상화한 조형물 난형환조 인데요.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의 혼령이 새생명으로

부활하는 소망을 담은 추모탑 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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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5.18민주묘지 참배 절차

분향하는 곳 옆에 설명이 되어 있답니다.

헌화를 우선으로 하여(생략가능)

분향을 한 후, 경례 하고 묵념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데요. 이 과정도 안내하시는 분께서

옆에서 과정을 설명해주시고, 묵념할 때도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노래가 나와서

더 진지하게 임할 수가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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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단계에서는 민주의 문에 집결 후

대열을 지어 추모탑으로 이동 , 참배단에 도열

(단체 참배의 경우 대표자는 1보 앞에 위치)

헌화와 분향을 마친 후 집례자의 안내에 따라

영령에 대한 공경의 뜻을 표한 후에

참배를 마치고 유영봉안소 이동 또는 뒤로 돌아

대려가는 순으로 참배가 진행된답니다.


현재 코로나로 인해 추모관과 유영봉안소는

폐쇄 조치 되어 들어갈 수가 없었답니다.

참배를 마친 후 제1묘역(신묘역)을 천천히

둘러 보면서 안내해주시는 분께서

희생되신 분들의 사연을 소개해 주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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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박기순의 묘


아까 입장할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면서

들어왔는데요. 그 음악은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열사의 영혼 결혼식 때 만들어졌던

곡입니다. 윤상원 열사는 그 때 당시 6남매의 장남

이셨고,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시고

서울에 주택은행에 취업을 하셨는데 그때 당시

상황이 노동자들의 힘든삶과 민주주의가

무시되었던 삶에서 나혼자 그렇게 잘 살 수 없다

하셔서 광주로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박기순 열사는 박기순 열사가 중점이 되어서

들불야학이 만들어졌는데, 그때 박기순열사와

윤상원 열사는 야학 동지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박기순 열사는 1980년 5월 일이 일어나기

전 78년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었고, 윤상원

열사는 마지막 까지 도청에 계셨던 분으로 학생

수습대책위원회로 활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투사회보를 만들어서 이를 알리고, 도청에 끝까지

남아 계시다가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 이후 2년 정도 지난 후에 두분의 영혼 결혼식

이라도 시켜주자고 해서 아름다운 두 영혼의

영혼 결혼식을 시켜준 후에 이렇게 같이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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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수의 묘

(사진이 없음)


전재수님의 묘에는 사진이 없는데요.

그 때 당시 사진이 귀한 시절이라 사진이 없는

분들의 묘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전재수님은 효덕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였는데요. 그 당시에 휴교령이 내려져서

학교를 가지않고 있어서 집에 있다가

아버지께서 나가 놀으라고 하셔서 뒷산에서

친구들이랑 미끄럼틀을 타고 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지나가던 계엄군이 서로

너무 많은 군인들이 내려와서 서로 정리가

안된 상태였기 때문에 오인사격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 와중에 전재수님은 총소리를 듣고

도망가다가 고무신을 신고 있었는데, 벗겨져서

그 걸 주우러 가던 찰나에 총알에 맞고

돌아가시게 되었답니다. 초등학생의 몸에

총알이 7발이 박혔는데, 아무도 조준사격을

한 사람이 없다고는 하는데.. 그건 말이 안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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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뒤에 보시면 가족분들이나

돌아가신 분들의 일기장에 써있는 글들을

남기곤 하는데 아버지께서는

고이 잠들어라, 이 한마디만 남겨놓으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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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0묘역은 다른 묘들과 다르게

특이한 점이 있는데요. 봉분이 없답니다.


사망한 사실은 확인이 되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하여 봉분없이 영만 모셔져 있어서

묘비에도 누구누구의 묘가 아닌 @@의 령

이라고만 적혀 있답니다.

행방불명자의 묘는 총 84분이 계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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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아까와는 반대로 10구역의 묘는

시신이 없는 행방불명자라면 이 곳은

시신은 있는데 연고를 찾지 못한 무명열사의

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11분이 계셨는데

나머지 5분은 DNA 검사로 연고를 찾고

나머지 분들은 찾지 못해서 무명열사의 묘로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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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운의 묘


김기운님 송원고등학교 2학년 재학중이었고,

집은 고흥이셨는데,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하여 오셨다고 합니다. 부모님들은 바닷가에서

일을 하시고, 할머니가 손주 밥 챙겨주시고

해야되서 같이 광주에 올라오셔서 살았답니다

당시 시위에 가담하다가 21일 날 집단 발포 때

사람들은 처음에 총소리가 공포탄인줄 알았는데

피를 흘리면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도망을 갔는데 그 이후 일행이랑 흩어져서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죄책감이 심해지시고, 아버지는

본인의 어머니를 원망하시고, 결국 할머니는

슬픔과 죄책감에 힘들어하시다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계속 술을 드시다가 60도 안된 나이에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풍이 오는

이렇게 가족의 삶이 한순간에 풍비박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작은 아버지께서

조카를 유공자로 하기 위해 서류 같은걸

하러 가시다가 학교에 갔는데 생활 기록부에

정말 말도 안되는 그런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망나니다.

너무 성실하고 공부도 잘한 학생이었는데...

따졌더니 그 때 당시 담임과 교장선생님이

사과를 하면서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면서

김기운 님이 행방불명 됐다는 접수가 된 이후

경찰들이 학교로 찾아와 문초를 당하시고

생활기록부를 고치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바로 된 게 아니라 10년 만에

인정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같이 시위에

가담했던 분들이 증언까지는 못하고

진술서를 써서 국가유공자로 인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제일 처음에 김기운님도 구묘지에 연고

없으신 분들의 묘가 있었는데 거기에 안치되셨다가

유골 발굴을 해서DNA 검사를 해서 찾으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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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기의 묘


김의기님은 광주 분이 아니셨습니다.

경북 영주 분이셨고, 서울에서 서강대

무역학과 학생이였답니다. 그 당시 농촌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농촌 문제 관련 회의가 있어

함평에 오셨다가 광주에 오셔서 그 상황을 목격

그리고 서울에 가서 그 상황을 최초로 목격한

목격자로 종로 5가 기독교 회관에서 동포에게

알리는 글을 만들어서 뿌리시고 투신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518 이후에 이것에

대해 알리기 위해서는 본인의 몸을 투신하시거나

희생하면서 알리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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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둘러보기만 했더라면

잘 몰랐었던 일들일텐데 이렇게

설명을 해주시고 그 때 당시 이야기를

들으니 더 와닿고 마음이 아파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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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기억해야할 이달의 5.18민주유공자를

한 분씩 선정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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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월의 5.18민주유공자는 기남용님

이셨습니다. 한가정의 가장으로 낮에는 피복상을

운영하고 밤에는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였던 그는

1980년 5월 21일 시위 차량을 타고 도청으로

향하던 중 계엄군의 사격으로 발목에 총상을

입고 굴러 떨어진 채로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심한

구타를 당해 사망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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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묘역을 둘러 본 후 2 묘역으로

이동을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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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문을 지나면 2묘역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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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옥 건물의 휴게공간인 역사의문

지하에는 어린이체험 학습관이 있는데

이 곳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지금은

휴관상태라고 합니다. 어서빨리

코로나가 사라지기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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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성곽에서 주변을 감시하던 누각 모양의 건물인

승모루를 지나면 2묘역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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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묘역은 봉분이 있는 묘가 아닌

평상묘로 되어져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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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의문 , 시민의 문 추모관 , 유영봉안소

등이 있는 이 곳이 바로 신묘역 이고요.

광주시립묘지 3묘역에 구묘역이 있어서

온김에 그 쪽도 함께 둘러보기로 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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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묘지로 들어가면 앞에

관리사무소와 구내 매점이 있는데요.

그 옆에 정자가 있는데 그사이로 가며

구묘역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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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산화하신 분들이 안장되었던 망월동 구묘지인데

1994년 부터 묘지 성역화 사업이 추진되었고

1997년 국립5.18민주묘지의 완성과 함께 이장 후

현재는 가묘 형태로 복원 되어 있는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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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망월동묘지라고 불렸으며 당시 시민들은

처참하게 훼손된 주검을 손수레에 싣고와

이곳에 묻었고,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거나

5월 27일 도청 함락 때 희생된 주검은

청소차에 실려서 묻혔다고 합니다. 구묘지는 당시의

참상을 처절하게 안고 있는 곳으로 현재까지 국내외

참배객들이 수없이 다녀간 곳이기도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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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년로 더 많이 알려진 이한열 님의

묘도 여기에 있는데요.전남 화순 출생으로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서 전경이 쏜 초루탄을 맞고 사망한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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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5.18민주묘지는 5.18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역사적 의미를 확인하는

상징적인 공간이자, 의로운 희생의

가치와 자유와 정의를 갈망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삶이 만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제 40주년 5.18 기념일을 맞이하여

방문하였는데, 광주를 살면서 정말 자랑스럽고

다시 한 번 감사했던 날이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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