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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들 2기] 518 오월 의향길 학생독립운동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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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121-07-01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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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기에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오월 의향길에 다녀왔습니다. 5.18기념재단이 만든 인권길, 민중길, 의향길, 예술길, 남도길로 구분된 오월 길은 5.18사적지와 광주의 생활, 문화, 예술, 자연을 연계해 다양한 코스가 있어요. 특히 의향길에는 의병항쟁. 학생독립운동. 4.19혁명 코스로 짜여있답니다.


오늘 제가 다녀온 오월 의향길은 자주성을 되찾으려 했던 피 끓는 학생들을 만나는 길입니다. 총거리는 10.6km 소요시간 : 약 2시간 45분(구 나주역 코스 시간 제외) 정도 걸리더라고요. 저는 구 나주역을 포함하여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구 구동공원, 광주교, 광주역 옛 터, 구 일본인 소학교, 구 전남도청, 부동교 ~ 광주제일고 코스인 오월의향길을 걸어보며 민주주의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나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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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는 한. 일 학생들의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인 학교(광주 중학교) 학생들이 광주 여고보 여학생을 희롱했던 것입니다. 11월 3일 광주 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된 나주역 한. 일 학생 충돌은 단순한 패싸움이 아닌 일제에 대한 저항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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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수탈과 멸시를 몸으로 체험하면서 자란 한국인 학생들과 일제 식민권력의 보호 아래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었던 일본인 학생 사이에는 항상 갈등과 마찰의 요인이 있었으며 이것이 쌓여 오다 결국 폭발해 버렸던 것이에요.





학생독립운동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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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일제시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곳이에요. 기념관 1층은 참배실이 있어요.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그들의 희생을 기리고 추모하는 공간이랍니다. 2층 전시실은 광주학생독립운동 자료와 수집 전시된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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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학생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데에는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조선학생전위동맹 등의 학생단체와 조선청년총동맹, 신간회, 근우회 등 전국적 조직망을 가진 사회. 청년 단체들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해요. 이는 학생운동이 사회운동. 민중운동과 결합되어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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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은 113개의 계단을 올라가서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광주 정신인 정의로움을 실현한 분들께 조용히 묵념하며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광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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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소는 구 구동공원, 현재의 광주공원이에요. 1912~1913년 9,600평의 성거산 정상에 조성되었고 광장에는 무려 1,200평의 광주 신사가 있었다고 해요. 그 당시에는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억지로 강요하는 시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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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은 일본 일왕의 생일 축하 날인 명치절 이었고 일제는 학생들에게 기미 가요제창을 부르게 했지만 학생들은 거부, 침묵으로 저항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신사참배도 거부했고요 이러한 행동은 기념식이 끝난 후에 조선학생과 일본 학생의 충돌로 이어졌어요.




광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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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지어진 광주교는 지금의 모습과 달리 징검다리와, 어설프게 만든 나무다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남쪽에서 오는 사람과 차량은 이 다리를 거쳐 광주의 중심가로 들어올 수 있었데요. 광주교는 일본인들에게는 광주공원 신사로 가는 길로, 광주 시민들에게는 장터 가는 길로 여겨졌던 곳이라네요 늘 보던 다리에 이런 역사가 담겨있었습니다.




광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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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의 생일 행사가 끝난 직후 거리로 나온 학생들은 광주역 앞에서 목검, 일본도 등으로 무장한 광주중학교 학생(일본인)과 광주고보생과 농업 교생, 전남사범학교 학생들과 격돌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1980년 5월 18일 광주시민과 계엄군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여졌던 곳이기도 한 광주역은 한국 역사의 가장 뜨거운 순간을 함께한, 참으로 의미 있는 장소랍니다.




전일빌딩245, 옛전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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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소인 구 전남도청을 보기 위해 들린 전일빌딩 245에요. 새롭게 단장한 전일빌딩 안에는 한눈에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245 카페가 있는데요 시원한 음료와 함께 잠시 쉬어가기 좋을 곳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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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를 위한 시민광장으로 분수대를 중심으로 하여 집회를 열었던 곳 또한 계엄군이 주둔했던 장소로 시민들의 저항과 분노의 대상이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무력진압에도 시민 군이 끝까지 저항했던 최후의 항쟁지는 1929 11월 3일 어떤 장소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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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역에서 격돌이 있은 후, 시가지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은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고 애국가를 부르며 기세를 높였다고 해요. 일제에 맞서 대항했던 용기 있는 정신을 5.18 민주화운동에서도 그대로 이어온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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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 만들어진 광주 부동교는 광주 불로동과 남구 사동을 잇는 다리입니다. 당시 학생들은 일본 학생들이 다니는 광주중학교의 습격을 시도했지만 경찰의 제지에 유혈 충돌을 피하고 금동을 지나 부동교를 건너 광주천을 따라 내려가다가 광주교를 건너 광주고보로 돌아왔다고 한다. 




광주제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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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상지 1호인 바로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입니다. 지금의 제일고등학교에요. 당시 신문에서는 11월 3일의 시위를 3.1 운동 이후 처음 보는 큰 사건으로 보도 했을 정도였다지요. 광주학생독립운동과 성진회. 독서회. 소녀회 등으로 검거 토옥된 학생들과 사회단체 지도자들로 당시 광주 형무소는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해요 투옥된 학생들은 옥중에서의 일제에 대판 지연과 고문 가혹행위에 대항해 집단 또는 개인적으로 구호, 단식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투쟁했다고합니다. 역사적인 이 곳이 오월길의 마지막 코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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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역사 속에서 계속 이어온 기질은 곧 정의로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보고도 못 본척 하는 요즘 시대에서 꼭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의로운 일에 앞장서온 광주학생독립운동과 5.18민주화운동은 정의로움을 실현한 점에서 서로 닮아 있더라고요. 광주 곳곳에서 이 같은 정신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다녀 온 오월길은 오월정신을 따라 걷는 여정이었어요 여러분도 코스를 선택한 뒤 역사적 진실과 사실을 마주해보세요 의미있는 시간이 될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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