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중항쟁 주먹밥기획 - 주먹밥 원형의 부활
제41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안녕하세요! 제41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오월홍보단 오월이들 입니다!
이번에는 5월을 맞이하여
뜻깊은 기획행사가 진행되었는데요
시민군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이것
무엇인지 아시는 분들 많이 있으시죠?
바로 주먹밥인데요
오월정신 계승을 위한 주먹밥기획
그 주먹밥 원형의 부활이라는 주제로
당시의 상황 그리고 그 이후 부터 오늘날까지
그 긴 세월의 이야기를 오늘 이자리에서
주먹밥과 함께 나누어 주셨는데요
그 내용과 이야기 다함께 한번
보실 수 있는 포스팅을 펼쳐나갈까 해요!

비가오는 일요일의 오후
양동행동복지센터에서 진행이 되었는데요

왜 양동행정복지센터에서 진행이 되었냐면
80년 5월 양동 최초로 주먹밥을 시민군들에게
전달해주었던 실제 주인공들을 이 곳에
모셨기 때문인데요!

공중파 뿐 아니라 각종 언론매체에서도
이 자리를 빛내주러 오셔서 뭔가 뭉클하기도 했어요!
환경은 다르지만 80년 그때 당시의 그대로를
시연하고 인터뷰하는 시간을 갖는 자리였어요

오늘의 주인공들은
80년 민중정신을 최초로 실행하신 어머니들인데요
이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우리가 이어가기 위해서
오늘의 행사를 하게 되었죠!

이 518민중항쟁 숭고한 정신을
개개인의 스토리텔링까지 더 다듬어서
앞으로 42주년, 43주년 계속 이어서
어머니들 한분 한분의 이야기도
만들어 질 수 있도록 만들어나갈 예정이라해요!

오늘의 첫 전체적인 어머니들을 모시는 것으로
시작이 되는데요
80년대 주먹밥 솥단지가 여러 곳 있었는데
양동, 대인시장, 남광주, 산수오거리 등
솥단지가 있는 곳을 넘어서
당시에는 광주시민 모두가 한마음이었죠
지금은 양동행정복지센터로 된 이터가
양동에서는 처음이자 최초로 주먹밥을 나눴었고
그 당시에는 이 자리가 방앗간 자리였다해요
당시에 어머니들은 이 방앗간 길 건너에서
노점상을 하시다가 방앗간 자리에 모여
쌀을 쪄서 주먹밥을 만든 공간이자
역사적인 공간이라서 이 곳에서 시작을 했죠

잠시후 어머니들께서 나오셔서 인사를 하시고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죠
어머니들은 당시에 아무것도 모르고
리어카를 끌고 장사를 하고 다니셨는데요
어느날 아침에 장사를 나오셨는데
시민들이 "전두환은 물러가라"라는 소리가
들리는데 정말 어머니들은
'전두환이가 누구한테 물러가라할까?'
라는 생각으로 넘어가셨다고 해요

그리고 그 이튿날 학생들이
"아주머니들 우리 물좀 주세요" 라고 하기에
"오매 그러이소" 하고 물을 줬더니
너무 급하게 꼴딱 꼴딱 물을 드셨다해요
그리고 또 그 이튿날 "어머니들 배가 너무 고파요"
하자 밥을 주시면서 전두환이 무슨 내용인지 물었고
공수부대가 투입되어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내용을 그때 알게 되셨다고 해요

그 당시에 노점상을 하시던 어머니들도
돈이 없고 배고프던 시절이지만
상인들이 의기투합하여 1,000원씩 모아서
빵과 우유를 사서 박스에 다 담아서
시민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해요
그뒤로 또 오면 또 나누어 주고
그렇게 반복하던 중

"이제 우리가 이럴게 아니라
돈을 모아서 밥을 해서 줍시다"
라는 의견이 나왔고 당시에 방앗간이었던
현재 이 자리에서 모여서
돈을 모아 쌀을 한가마니 구매하셨다해요
그렇게 밥을 쪄서 사과박스에 부어서
리어카에 싣고 바가지에 물을 떠서
직접 손수 나누어주고 다니셨다고해요

당시에는 빨간 대야
새로 살 틈도 없었고 쓰시던 것을 가져와서
거기에 만드셨고 너무 정신이 없으셔서 사과 박스에 던져서
주먹밥을 나르셨다고 해요
그래서 모양을 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준비해서
시연을 했었어요!

당시의 다급했던 상황을 다시금 떠올리시며
분주한 손놀림으로 주먹밥을 금방 금방
만들어내시기 시작했었는데요
당시에 학생들, 열사들, 시민군 등에게
도움을 주면 끌려가고 모진 고문을 당했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동네가 처음에는 찾기 어려웠는데
최초로 양동에서 어머니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이렇게 뛰어들어 도움을 주셨죠

전남대학교병원, 조선대학교병원에도
직접 주먹밥을 나눠주시러 가지고 가셨다해요

반찬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 주먹밥만으로도 환장을 할 정도로
맛있게 드셨다고하는데 그 얼마나
밥한끼 먹기 힘든 상황이었는지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상상하기도 어렵더라구요

몰래 몰래 해서 싸주었던 것이
오늘날까지 오셨다며 미소짓는
어머니의 미소에 그간의 세월들
그리고 당시에 행하였던 행동에 대한
올곧은 의지를 볼 수 있었어요!

당시에 해코지에 대해서도
힘들고 서러웠던 일화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내 자식 같다는 생각에 나섰는데
당시에 공수부대가 도움을 준 분들을
색출하고 다닌다해서 숨어다니셔야했고
또한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
그리고 빨갱이라는 소리까지 들으셨다고 해요
본인들의 주머니 사정도
여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에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사정해서
돈을 걷고 그걸로 쌀을 한가마니 반을 사서
한가마니는 도청으로,
반가마니는 전남대학교로 보내주시기도 했다해요

어머니들의 노력에 다른 분들도 감동해서인지
노점상 어머니들도 이렇게까지 하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야겠냐며
나중에는 도청 앞에 많은 분들의 도움이 생겨서
밥이 쌓여가기 시작했다고해요
그 모습을 보자 가슴도 두근 거리고
벅차오르고 겁도 나기도하고
많은 심정이 들으셨었다고해요!

그리고 곽미순 어머님의 이야기도 이어졌는데요
80년대 당시에는 계시지 않았지만
86년도에 양동으로 오셔서
함께 하시면서 88올림픽을 앞두고
노점상 단속을 국가에서 심하게 진행했는데요
노점상 생존권을 위해서 싸우는 과정에서
어머님들의 역사적인 상황을 알게 되었고
20년 그리고 30년동안 어머님들 가슴속에
응어리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을 하고 계시는데요
양동 노점상 상인회 대표를하고 계시는
곽미순 노점상 회장님을 모셨죠

그때는 생활이 어렵고 본인들도 먹고 살기
힘든 상황들이었는데 어머니들께서
주먹밥, 간식 뿐 아니라 용돈까지도
몰래 몰래 쥐어주셨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그러한 분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뿌듯하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또, 518민중항쟁 이후로.. 공화당이었기에
밥 해준 것도 다 죽인다고 빨갱이라고
노점상들 그리고 그 직계족들까지..
경찰, 군인들에게 핍박을 받으셨다고해요
그 고통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들을 수 있었어요

1992년도
故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최고위원일 때,
양동 노점상 어머니들에게 하셨던 말씀이 있는데
"미국 백악관 앞에가면 거기 노점상들도
허락을 받고 장사를 하고 있는데
여러분들 518민중항쟁 당시 주먹밥 해주었다는
이유로 숨어서 장사할 것 없다
떳떳하게 장사를 하시라!"
그렇게 이분들과 그대로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장사를 하고 계시다고해요!
5.18만 되면 노점상에서 밥해주었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고 살았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당시에 계시던 120명 가량의 노점상 분들이
이제는 거의다 돌아가시고
오늘 자리에 오신 분들만 남아있는데
다른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분들 또한 살아있는 역사의 산 증인이기 때문에
잊혀지지 않게 해주셨으면 한다고 하셨어요

지난 41년동안 얼마나 고통의 세월들을
보내오셨을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요
이 역사적 사실과 실체를
기록하고 널리 널리 알려
518민중항쟁 정신을 널리 알리고
유실되지 않게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어요

이날 어머니들은 한살림광주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부터
쌀들을 기부 받으셨는데
그대로 바로 미얀마의 민주화 회복을
위해서 기부를 다시 해주셨어요

우리 어머니들의 피땀 흘리셨던 그날의
518민주화운동 그 정신을 이어가고
또 많은 분들이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월홍보단 오월이들은 곧이어 또 다른
뜻깊은 기념행사로 여러분께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5월을 맞이해서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하단에 첨부하니까
많이들 보고 참여하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