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들 2기] 광주 가볼만한곳 518 주먹밥 원형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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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가볼만한곳 주먹밥 원형의 부활
양동시장 그때 그 순간 어머니가 해주시던 주먹밥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저도 어릴 적 518을 직접적으로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41년 전 위험했던 순간을 직접 보내신 어머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광주 서구에 위치하고 있는 양동 주민센터는 과거 양동시장 어머님들이 이곳에 모여서 주먹밥을 직접 만들었던 장소입니다. 518 앞에서 군부대에 맞서 싸웠던 시민들과 학생들이 있었다면 뒤에서는 아낌없이 먹거리를 제공했던 광주시민들이 있었습니다.
518행사가 시작하기 전 몇 달 전부터 행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신 담당자분들의 인사말씀이 있었습니다. 주먹밥은 국민들 누구나 가볍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유명한 먹거리 음식으로 되었지만 과거에는 간단하게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으로 구분되었습니다. 긴박했던 순간 밥을 만들어서 광주시민들에게 제공해 주는 것 자체로도 그들은 엄청난 희생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잡혀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식 같은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싶었던 부모님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해 봅니다.
광주 가볼만한곳 주먹밥 원형의 부활
518이 되면 광주는 곳곳에서 주먹밥 행사가 진행됩니다. 주먹밥을 만들어서 주민들과 함께 나눠먹는 체험은 기본이고 어려운 이웃을 방문해서 먹거리도 제공해 줍니다. 518은 어느 순간부터 매년 진행되는 형식적인 행사가 아닌,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의미 있는 광주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주먹밥을 함께 먹고 만들어 봄으로써 518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고 시민들과의 연대의식 또한 깊어지게 됩니다.
광주광역시 양동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진행되었던 이번 행사는 "주먹밥 원형의 부활"이라는 주제로 어머님들이 뭉쳤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오늘 뭉쳐서 그들이 하고자 했던 말은 518을 왜곡하는 말들과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기억들이었습니다. 무서웠고 떨렸고 밖에 나가는 것조차 지옥이었다는 어머님들은 그때의 5월은 광주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달로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양동시장에서 물건만 팔았던 이들이 어쩌다가 주먹밥을 만들게 되었을까요? 정치에도 1도 관심 없었던 어머님들이 전두환이라는 이름 석자를 외우게 된 이유는 뭘까요? 그건 군부대의 부도덕한 쿠데타로 광주를 억압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님들은 주먹밥을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하나둘씩 시장을 지나가면서 "저 물 좀 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부탁에 바가지로 물을 떠서 줬던 것이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광주 가볼만한곳 주먹밥 원형의 부활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이곳은 주먹밥이 처음 만들어진 방앗간이 위치하고 있던 장소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그때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마이크로 10여 분을 하소연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며칠이 지난 학생들과 시민들은 배가 고파 죽겠다는 말을 어머님들께 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양동시장 어머님들은 결심을 하셨다고 합니다. 자식 같은 아이들이 광주를 위해서 이렇게 희생을 하는데,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노점에서 장사를 하셨던 분들은 조금씩 돈을 걷었고 고생하는 광주시민들을 위해서 밥을 해주게 됩니다. 조금씩 모은 돈은 쌀을 구매하였고 사과박스에 몰래 담아 리어카로 돌아다니면서 주먹밥을 나눠줬다고 합니다. 어머님들은 따뜻한 주먹밥을 제공해 주고 싶은 마음에 밥이 만들어지면 바로 손으로 맛있는 주먹밥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밥은 생각보다 뜨거웠고 군인들이 쳐들어 올까 무서워 마음은 급하기만 했다고 합니다. 밥 + 소금 + 김이 전부였던 주먹밥이지만 학생들과 시민들은 이보다 맛있을 순 없다는 표정으로 맛있게 먹어주었다고 합니다.
좋은 일을 하면 보상을 줘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인데, 그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광주시민들에게 밥을 해줬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아가는 분위기도 군부대에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제가 518현장에 있었다면 어머님들처럼 행동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한 주부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들은 아이들이 있었을 것이고 남편도 있었을 겁니다.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어느 순간 가족들을 군부대에서 잡아가 버리면 죄책감에 평생을 정상적으로 살 수 없었을 겁니다. 이런 희생을 하면서까지 그들은 광주 시민들을 도왔습니다.
광주 가볼만한곳 주먹밥 원형의 부활
전남대와 조선대학교 학생들은 양동시장 어머님들 덕분에 겨우 살았다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몇 년 후에 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사하는 것도 몇 개월간 옆에서 친엄마 도와주는 것처럼 와주었다고 합니다. 518은 단순한 희생이 아닌, 그 안에 광주시민들의 모든 애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80년 민중 정신을 처음 실행하셨던 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41주년 518의 의미를 되새겨 주니, 저 또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분들의 숭고한 정신이 아니었다면 현재 우리는 또 다른 미래에 살고 있을 것입니다.
80년 시민 군을 거들었다는 이유로 트라우마가 된 광주시민도 있고 우울증을 시달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시간은 지났고 이제는 우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518의 진실을 감추려는 몇몇 분들도 언젠가는 마음이 돌아설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을 나눠준다는 건 광주시민들의 끈끈한 "정"이었습니다. 주먹밥의 상처가 이제는 "주먹밥"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어머님들은 당연한 걸 하셨다고 손사래를 치셨지만 그들의 행동이야말로 숨은 곳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광주의 또 다른 희생정신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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