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여행 가볼만한곳 알려드릴께요

안녕하세요. 오월홍보단 꼼꼬미냥입니다.
오월홍보단으로 이번에는 광주가볼만한곳을 찾아 보았는데요. 5.18의 사적지는 참 많더라고요.
여기저기 찾아보았는데, 아무래도 가장 강력한 격전지인 금남로 일대에 많이 몰려 있더라고요.


저는 오늘 광주공원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전일빌딩245, 문화전당역쪽으로 이동해 보려 합니다.
광주공원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제 걸음속도로 약 10 ~ 15분 사이 정도 밖에 되지 않더라고요.
저는 조금 왔다갔다 했지만, 당일 광주여행코스로 생각하면 광주공원 ▶ 5.18민주화운동기록관 ▶ 전일빌딩245 ▶ 문화전당역 순으로 방문해 보거나 반대로 문화전당역을 시작으로 ▶ 전일빌딩245 ▶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광주공원 순으로 방문하고 와도 좋을 듯 합니다.

참고로 광주여행 중 이런 모양의 흔적이 있는 곳을 발견한다면 그곳이 바로 5.18사적지랍니다.


전일빌딩 245
광주 동구 금남로 245
영업 시간
매일 09:00 - 19:00
문화해설시간 10:00~18:00
1월1일, 설날, 추석 휴무
문의 062-225-0245
먼저 광주 가볼만한곳 전일빌딩245는 5.18 사적지 28호로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의 헬기 사격흔적이 바닥과 기둥, 건물 벽 등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현장입니다.
약 4년간의 복원을 하고 현재는 총 245개의 탄흔자국을 공개하였으며 주소 또한 금남로 245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10층으로 가면 문화해설을 들을 수 있기도 합니다.


광주의 시민이 모두 모여 최후의 항전을 벌이던 옛 전남도청 바로 앞에 있기에 그 날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요.
이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에 전두환의 거짓말을 밝힐 수 있던 것입니다. 광주 518여행을 계획 중이라고 하면 반드시 들러봐야 할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
영업 시간
매일 09:00 - 18:00
문화해설시간 10, 11, 14, 15시, 16 : 30분
문의 전화 062-613-8204
광주 가볼만한곳 두번째는 금남로의 518기록관으로 1980년 당시 시민들이 활동하며 만든 자료들과 그 후 수습하는 과정까지 모든 흔적과 기록을 하나하나 찾아 만들어 가는 일을 하였고, 그 내용을 전시하고 있는 공간으로 이 기록물들이 2011년 5월 25일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오늘은 해설을 들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시간을 좀 더 많이 보냈는데요. 이 곳은 원래 카톨릭센터의 자리로 그 당시의 유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도 있어요.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바로 이 총탄이 박힌 유리창입니다. 이 유리창은 당시 광주은행 건물의 창문인데, 계엄군의 총알이 뚫고 지나간 흔적 그대로를 보존하면 사용하고 있다가 1997년 이전을 하면서 광주광역시에 기증했다고 하네요.
80년부터 97년까지 무려 17년간을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라웠는데요.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증거로 남겨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였다고 해요. 정말 대단한 분들이구나 싶었어요.

기록관은 1층과 2층에 관한 해설을 들을 수 있고, 3층부터는 혼자 보면 되는데요. 5층의 수장고에는 5.18 당시의 물건 원본들이 그대로 본존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6층에는 카톨릭센터였던 당시 신부님들의 공간이 그대로 보존되어 공개되고 있습니다.
해설을 기다리기 전에 다른 층들을 먼저 살짝 살펴 보았어요.




당시 카톨릭센터였던 곳으로 윤공희대주교의 집무실이 6층에 위치하고 있는데, 당시 사용하시던 책장이나 침대 등 모든 것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요.

5월 19일 이곳 6층 집무실에서 창밖으로 내려다 본 골목에서 계엄군에게 폭행당한 젊은이가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응급조치를 취해야 할텐데 생각하면서도 두려워 실천하지 못했다
사제 역시 움직이지 못한 만큼 무섭고 긴박했을 당시...
바로 당일 명동의 서울대교구청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공수 부대의 만행을 알렸고, 김수환추기경은 계엄춘의 만행을 멈추도록 협조를 요청했대요.
당시 신부 8명이 보안대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김성용 · 조비오 신부님들은 '내란중요임무 종사자'로 지목되어 군사재판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고 하니 참... 별일도 다 있습니다.

당시의 금남로 일대를 그린 지도 그림인데요. 제가 빨갛게 표시해 놓은 것이 당시 카톨릭센터, 지금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입니다.
주변을 보면 윗쪽에 계엄군 최초발포지부터 고용터미널의 학살, MBC방화, 도청의 항쟁, 바로 아랫쪽의 적십자병원, 전투훈련장인 광주공원까지의 지도를 확인해 볼 수 있어요.



당시 신부님들이 사용하시던 물품들과 성당내부 역시 볼 수 있도록 남겨 두었습니다.

5층의 수장고에는 당시 흔적의 원본들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수장고가 있는데, 안쪽까지는 들어갈 수 없어서 살포시만 보고 왔어요. 이 원본들이 모두 유네스코 기록유산입니다.

4층은 도서관처럼 조용한 공간이라 그냥 내려왔답니다.



그리고 3층에서는 3D영상실과 기획전시실이 있어 해외의 민주화운동에 관한 사례들과 5.18 당시의 영상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시간이 넉넉하다면 들어서 영상을 보실 것을 권하고 싶어요.

저는 오늘 최문정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었는데, 실감나면서도 자세한 설명 덕에 저도 조금은 더 5.18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전 주에도 살짝 둘러 보았는데요. 그냥 혼자서 둘러 볼 때와는 확연히 다르니까 해설사와 함께 돌아 보실 것을 권해 드리고 싶어요.
약 1시간의 여정이면 충분합니다.

1980년 당시 민주화운동은 대학생들로 부터 시작이 되었는데요. 당연히 전국의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외쳤으며 당시에도 지금의 촛불시위처럼 처음은 평화시위였다고 합니다.

이 사진이 바로 역전남도청의 광장 현재 문화아시아전당인데요. 전일빌딩까지 보이는 곳입니다.
이 장소는 서울로 치면 광화문광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시위를 할 때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던 것이죠.
왜 하필 광주였을까?? 하는 저의 의문은 여기에서 살짝 풀렸는데요. 지금이야 SNS와 인터넷이 발달해 있으니 뉴스에서 보도를 하지 않더라도 소식을 알릴 수 있는 수단이 있지만, 당시에는 뉴스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 가득 시절이었죠.
또한 지금은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어지간한 자료가 다 나오지만, 그러한 흔적도 남길 수 없는 시기이니 감추려면 얼마든 감출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수없는 거짓으로 루머를 퍼뜨려 당시의 군부체제를 탄탄하게 하고 싶었겠죠.
-여긴 제 생각입니다만,
애시당초 오히려 서울이라면 안되었던 것이겠죠.
정보 전달이 어렵도록 서울과 멀 것. 완전차단이 가능할 것 등의 조건으로 광주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다른 지역보다 인구도 적으니까 말이죠.
솔직히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 왜 굳이 북한과 가까운 서울도 아니고 광주를? 중간에 수없이 많은 장애가 있었을텐데 그 멀리까지? 이해할 수 없는 거짓이죠.


처음에는 소소한 대학생들의 시위였던 것이 공수부대인 계엄군에 의해 가장 먼저 시각장애인 김경철씨가 사망했고, 이후 사상자들이 생기게 되니 학생들이 무장을 하고 시위를 더 강하게 하였어요.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사격으로 아이, 임산부, 학생, 노인할 것 없이 주위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본 시민들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내 자식이, 내 부모가, 형제가 죽었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사람들이 있을까요?
학생들만의 시위에서 시민의 시위로 발전하게 된 것압니다.


들어서면서 정말 많은 분들의 사진과 정보를 보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상이나 구타(타박상)으로 사망하셨습니다.
그 들 중 가장 많이 사망한 날이 5.21일과 27일에 가장 많은데, 집단 발포와 마지막 항쟁이 있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ㅠㅠ


광주의 들불야학에서 선생님과 학생, 노동자들이 직접 만들어서 뿌린 투사일보입니다.
우리의 행동강령이 적혀 있는데요.
네번째를 보면 "계엄군이 발포하지 않는 한, 우리가 먼저 발포하지 않는다"
광주시민들은 이 행동강령들을 준수하며 시위를 했다고 해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언론에서는 오히려 북한군의 폭동으로 외곡방송을 했다지요.


대동세상이라는 작품입니다. 온 세상이 평화롭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자발적으로 계엄군이 잠시 물러간 사이 도로 주변을 청소하게 되었고, 일부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있었음에도 광주 시내의 금은방, 식료품가게 등에 단 한 건의 범죄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도청이 수습된 후에 서랍 속에서는 손대지 않은 월급봉투까지 그대로 나왔다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당시 저항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알법합니다.
당시 필요한 물품과 금전은 시민들이 직접 모아서 해결했다고 하는데요.
광주의 어머니들은 양은대야와 바구니에 주먹밥을 지어 시민군 차량이 지나가면 건데 주었다고 해요. 이 때부터 주먹밥은 관주공동체의 상징이 된 것이죠.





당시의 모든 상황이 끝난 뒤 금남로 일대를 청소를 하던 현장에서 발견된 신발과 탄피들입니다.
피로 물든 신발들.. 신발이 벗겨지는 순간 다시 신을 수 없었을 만큼의 긴박했던 그 상황들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주인 잃은 신발들은 끝내 주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때 쓰러진 사람들을 이렇게 짐짝처럼 수레에 싣고 사라졌다고 하는데, 어디로 갔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아직도 찾을 길이 없죠.


왼쪽은 당시 시신수습할 때 사용하던 마스크를 만들던 송희성님의 재봉틀입니다. 쓰고 남은 마스크들을 시민들이 사용했다는데, 이것을 신분을 감추기 위한 복면으로 탈바꿈되어 보도되며 만든 사람과 전달한 사람들이 나중에 끌려가 극한 고문을 당했답니다.
김군을 찾기 위한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이 분은 넝마주이였다고 하는데, 이 사진을 방송에서는 북한 광수1이라고 했다고 하는군요.
이 분이 쓰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마스크래요...

이 물건들은 5.18국립묘지가 만들어진 뒤에 사상자들을 이장하며 나온 물건들인데요. 이 물건들은 5.18광주 민주화운동 기록관에 기부되어 당시의 참혹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죠.



청년학생과 남녀시민들이 매일 작성하고 분수대 위에서 성명서를 낭독했고, 이 성명서들은 모두 15편으로 간직되고 있다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이죠.

나경택기자가 당시 찍은 사진의 필름입니다. 나기자님은 매일 사진을 찍어 인상한 뒤, 필름은 본인의 집이 아닌 친구의 집에 보관했다고 해요. 빼앗겨 사라지는 것을 걱정한 것이죠.
그렇게 자료를 잘 보관해 왔기에 5.18의 실제를 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민주화운동의 노래로 매일 5시 18분에 광장에 흘러나온다고 합니다.


2층의 마지막에는 5.18과 관련된 영화들에 대해서도 확인했는데, 화려한 휴가나 꽃잎도 관련된 영화인 줄은 몰랐습니다.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으니 저도 한 번 봐야겠습니다.
당시 군부가 광주로 향하며 내려진 작전명이 "화려한 휴가"라고 하는데요... 사람 죽이러가면서 화려한 휴가라니... 정말 소름돋네요. ㅠㅠ

이렇게 5.18 항쟁지인 금남로를 돌아 보았다면 1973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약 50년간 운영을 하고 계신 궁전제과를 둘러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나비파이와 공룡알이 유명하니 꼭꼭 먹어보기~

광주공원
광주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영업 시간
매일 00:00 - 24:00
문의 062-672-0660
슬금슬금 산책하며 광주 가볼만한곳 세번째 광주공원에 도착했습니다. 너무 슬픈 것들만 보았기에 리프레쉬하고 싶었어요.
광주공원입구의 중앙계단인데요.
깜짝 놀란 것이 "일제 식민통치 잔재물인 광주신사계단입니다"라는 문구로 아픔을 전달하고 있었는데, 조금 더 정보를 찾아 본 뒤에 다시 와 보아야겠다 생각했어요.



이 곳은 5.18사적지 20호로 지정되어 있는데요. 당시 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처 시민군을 편성하고 훈련했다고 합니다.



5.18 뿐만 아니라 6.25 당시의 전투에 대한 기념비도 세워져 있는 곳으로 노을지는 저녁에 들러도, 낮에 들러도 좋을 법한 곳이예요.



공원 주변으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정말 힐링!


광주공원에는 선정비들을 세워 놓은 비군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그들에 대한 칭송의 성격과정도에 따라 선정비, 영세불망비, 거사비, 유덕비 등 다양한 명칭이 붙어 있는데, 여러 곳에 흩어진 비를 모아 이 곳에 조성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쇠사슬로 가둔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가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쓰러진 형태로 있는 비석이 있어 이게 뭘까 싶었는데요.




바로 일제국권침탈의 협력자인 친일차 홍난유, 윤웅렬, 이근호에 대한 단죄문인 것이었어요. 그들의 죄상을 밝히고 흔적까지 그대로 남긴 것도 참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사실...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으려다 보면 자꾸 흔적을 지워버리려 하잖아요. 그렇게 지워 버리다보면 오히려 거짓이 진실로 뒤바뀌기도 하고, 반복하기도 합니다.
사실은 사실로 남겨 두어야 아카이브가 형성되어 바꾸지 못하는 진실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죠.

다시 금남로로 나오는 길에 본 광주천은 너무 예쁘더라고요.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광주현지인이 맛집이라고 알려준 화신모밀.
광주공원에서 금남로로 오는 길에 있는데 안타깝게도 영업시간이 3시까지라 이미 문을 닫았더라고요. 다음엔 꼭 방문한다! ㅋ
여행하는 분들 방문해 보셔요~ ^^



광주 가볼만한곳 네번째는 현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불리고 있지만 구 전남도청으로 5.18 최후의 항쟁지인 곳입니다.
이 곳은 5.18가적지 5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과거와 현재의 사진으로 변한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모습으로 복원사업을 진행 중인데요. 며칠 전 41년 전 계엄군이 쏜 총탄의 흔적인 탄투와 탄흔이 발견되었죠.
앞으로 꾸준한 복원사업으로 모든 사실이 증명되어 밝혀지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5.18 사적지 5-3호인 상무관입니다.
이곳은 계엄군의 학살에 희생된 이들의 시신을 모셔두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5월 29일에 상무관에 있던 시신들을 청소차에 싣고 망월동 시립묘지에 묻었다고 하는군요.





밤이 더욱 아름다운 문화전당입니다. 5.18 여행도 하며 데이트도 해도 참 좋겠죠?



문화전당까지 왔다면 바로 근처에 있는 다반사라는 찻집에서 여유있는 시간을 가져 보시는 것도 좋답니다.

여러분이 증인입니다.
역사를 잊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죠. 우리 모두가 증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