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들2기] 광주여행코스 고맙고 미안한 518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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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방문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광주는 어떤 이미지일까? 저는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대전, 대구, 인천을 거쳐 광주에 거주하게 되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광주에서 거주했다는 이유 때문인지, 고향처럼 정겹고 포근하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몇몇은 "광주 사람들은 518이야기만 평생을 한다"라는 말들을 하시지만 의문만 남고 정답이 없으니 현재까지 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는 게 최고의 정답일까요?
올해로 세월호 7주년이 되고 있지만 사건에 대한 진상도 규명하지 못한 채 가족들의 가슴에 슬픔만 쌓여가고 있습니다. 이 또한 주변에서 세월호 이야기는 그만 좀 했으면 하는 말들을 많이들 하십니다. 냉정하게 생각할 때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툭툭 던지는 말들이 대부분입니다. 자기 가족이 포함된 사건이었다면 절대로 쉽게 이야기하지 못할 겁니다. 518도 진상규명이 끝나지 않았는데, 가까운 세월호도 정답 없는 하루하루만 보내고 있습니다.
광주여행코스 518기념문화센터
세월호의 아픔을 가슴에 묻어두고 좀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광주여행코스 첫 번째로 방문한 장소는 518기념문화센터입니다. 광주에 살고 있지만 518관련 고마움을 가졌던 순간은 1년에 2~3회였던 것 같습니다. 이웃님들은 어떤가요? 광주 민주화 항쟁을 추모하기 위한 일 년에 한번 행사가 있는 날 광주가 떠오르시나요? 우리는 그들이 안겨준 자유를 누리면서 고마움도 잠시 잊고 살아갈 수 있지만, 유족들은 1년 365일 그때 그 순간을 생각하고 아파해 합니다. 그들에게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는 게 현명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518광주기념관은 치열했던 순간을 자세하게 표현해 주는 안내판이 벽에 붙어있습니다. 전남대학교 정문, 무등경기장 정문, 농성광장격전지, 구국군광주병원, 양동시장, 구시외버스터미널, 전일빌딩, 구도청, 남동성당 등 독재와 맞서 싸웠던 광주시민들의 피와 땀이 묻어있는 장소들입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사적지를 광주여행코스로 돌아보는 분들이 점점 증가하는 이유는 코로나19때문에 비대면 여행을 즐기는 분들이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광주여행코스 중 빠질 수 없는 코스들이 대부분 518관련 관광지입니다.
오월기억저장소는 2층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료입장이고 누구나 방문이 가능합니다. 휴일(토,일,국가공휴일 휴관)만 제외하시고 오전 9시 ~ 오후 5시 30분까지 518기념재단에서 알려주는 또 다른 518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가시기 바랍니다.
518이 진행되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데 성공했고 반역자를 유공자로 등급 조정을 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그들을 죽어서도 힘들게 했고 가족들에게 괴로움을 제공했습니다. 왜? 우리는 그들에게 잘못된 대접을 해야 했을까요? 518기념문화센터를 방문하면서 미얀마 사건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현재 진행형으로 끝나지 않고 있는 "미얀마 쿠데타"는 518의 과거 모습고 판박이처럼 유사합니다. 그들은 앞으로 광주처럼 수많은 희생을 치르게 될 것이고 주변 나라에서는 언론에서 부정적인 표현만 할 뿐 직접 가서 도와주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광주가 그러했듯이 그들은 외부에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알리는 게 최선이 될 것이고 가족들은 시체도 찾기조차 힘든 희생자들과의 작별을 해야 할 것입니다. 518관련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너무 화가 나고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 하면 사라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듭니다.
광주사태가 발생하고 현재까지도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이 있습니다. 이웃님들이라면 수색작업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나올 때까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골을 찾은 가족들은 수십 년이 걸릴지라도 유골을 찾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슬픔을 뒤로한 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유골 수색작업을 그만두는 순간 희생자 가족들의 마지막 인사마저 강제로 뺏어버리는 것입니다.
518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미래를 밝히는 도구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아직까지도 518관련 잘못된 정보로 가짜 뉴스와 가짜 정보를 주변에 알리는 분들이 있는데, 대한민국 국민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을 가지셔야 합니다. 518과 같은 과거는 오랫동안 보존하고 복원하는 과정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 당시 희생자들이 누리지 못했던 자유와 민주주의를 우리는 태어나면서 당연한 권리로 생각합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의 상무대 법정, 영창 등을 원래 자리에서 100m 떨어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습니다. 518민주화운동 관련 자료와 영상물을 전시하는 자유관을 신축하면서 광주의 또 다른 관광지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곳은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군사재판을 받았던 법정과 6개의 감방으로 이루어진 영창이 있습니다. 그밖에 연행자들의 고문과 조사를 받았던 헌병대 중대 내무반, 임시 취조실로 사용한 헌병대 식당 등 518의 리얼한 모습을 조형물과 함께 배치되어 있습니다.
518운동으로 잡혀온 학생들도 있고 자고 일어났더니, 군인들이 끌고 가서 영창에 넣었다는 시민들까지 빡빡하게 영창을 채우고 있습니다. 영창의 리얼함을 좀 더 부각시키기 위해 이곳에서 식사를 했던 모습을 음성과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하루 종일 고문 받고 하루에 한 끼 식자를 하는데, 두 사람 앞에 밥그릇은 1개가 제공되었습니다. 그것도 수저로 2~3스푼 먹으면 없어지는 적은 양으로 말입니다.
시대가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시민들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전두환이 무엇이라고~ 이렇게까지 충성을 하면서 광주를 북한군으로 오해시키면서까지 진압하려 했을까요? 그들이 추구했던 삶이 군대 승진이었을까요? 아니면 사람을 때리고 즐거움을 느끼는 사이코패스였을까요?
이곳에서는 하루라도 맘편히 쉴 수 있는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같은 민족끼리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요. 아우~ 과거로 돌아가서 군인들 모조리 혼내주고 싶네요. 가끔은 슈퍼맨이 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합니다. 언제요? 518관련 사적지를 방문할 때 말이죠. 인간이 아닙니다. 이건 동물을 사육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인간을 괴롭혔고 즐겼을 뿐입니다. 광주시민은 군인들에게는 몽둥이로 때려잡는 수단이었을 뿐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광주여행코스 고맙고 미안한 518여행
광주여행코스 농성 광장
농성역 지하철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광주형도시정원 농성광장에 도착했습니다. 계엄군 통제선과 시민군 방어선이 팽팽하게 맞섰던 장소로 이곳을 지날 때마다 가슴 아팠던 과거를 떠올리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합니다. 과거 군인들은 주택가를 향해 무차별 충격을 발포했고 무고한 시민들은 소리 소문 없이 희생당했습니다. 현재 "농성광장격전지"는 518사적 1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980년 5월 26일 새벽 계엄군은 대한민국 군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행동하게 됩니다. 무서움을 그들이라고 몰랐을까요? 도망가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곳에 있었던 학생과 시민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공포를 느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도망가지 않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총에 맞서 싸웠습니다.
죽음의 행진으로 알려진 "농성광장 격전지"는 1980년 5월 22일 계엄군이 국군광주병원 부근에 통제선을 설치하고 인구 주택가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무고한 시민이 희생당한 장소입니다. 그리고 5월 26일 새벽, 계엄군이 시내로 다시 진입하러 하자 시민수습대책위원들이 구 도청에서 농성광장까지 죽음의 행진을 하여 계엄군 장갑차의 시내 진입을 저지한 저항의 현장입니다.
기록으로 알아보는 "죽음의 행진"은 구 도청에서 양동시장까지 경열로를 따라서 돌개를 지나면 나오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계엄군의 학살 만행이 일어났던 분위기에서 행진을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그 자체가 죽음을 각오한 행진이라고 합니다. 총 없이 두 손으로 열심히 투쟁을 했지만 결국 그들은 27일 새벽 구 전남도청으로 진입한 계엄군에 의해 이슬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광주여행코스 양동시장 518여행
양동시장은 사적지 19호로 1번 출구 부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양동시장은 대동정신을 발휘했던 나눔의 공간으로 518민주화운동 당시 양동시장의 상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양동시장 상인들은 자발적으로 돈을 모금하여 시민군과 학생들에게 빵과 우유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밥(주먹밥)을 먹던 풍경도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조를 나누어 밥을 지을 정도로 일시적으로 진행되었던 모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양동이에 물을 받아다 목마른 이에게 주고, 함께 시위에 참여하는 등 시민이 하나가 되는 대동정신을 앞장서서 발휘했던 518 최고의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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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여행코스 518국군병원 옛터
광주비엔날레에서 진행되고 있는 작품 전시도 함께 구경하면서 돌아보기 좋은 이곳은 역사가 산책로가 되었고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이 되었습니다. 오래된 먼지처럼 쌓여있는 흔적을 찾아 하나씩 건물을 살펴보면서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국군광주병원은 518사적지 23호로 나무 냄새를 맡으며 느긋하게 힐링 산책을 할 수 있는 산책길입니다.
2018년부터 광주비엔날레와 함께 다양한 작품을 관람객에게 오픈하면서 전시를 통해 역사를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부지 안에는 본부근무대 막사로 시작해서, 세탁소, 교회 등 공포영화촬영장 처럼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비엔날레에서 작품 전시를 하는 곳을 제외하고는 내부 관람은 불가능합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게 전부입니다.
으스스한 풍경은 저녁이 되면 산책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방치돼 유리창이 깨져있는 곳도 있고 먼지가 그득한 내부 모습은 역사의 흐름을 느끼게 해줍니다. 폐허 같은 내부 풍경은 리모델링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배치해 둔 이유가 뭘까요?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면 전일빌딩처럼 리모델링을 통한 새로운 관광지로 옷을 갈아입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518 "41주년" 안에 518 사적지 29곳에 대한 시설물 훼손 여부 등을 점검하고 보수, 정비를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언젠가는 이곳이 180도 다른 쾌적한 공간으로 변경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가져봅니다.
광주여행코스 고맙고 미안한 518여행
국군광주병원 옛터는 518 어떤 증거자료로 남아있는 건가요?
국군광주병원 옛터는 1980년 518항쟁 당시 계엄군의 무자비한 고문, 폭행으로 다친 시민들이 치료를 받았던 곳으로, 518사적지 2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당시 계엄사에 연행돼 심문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는데, 이곳까지 계엄사 수사관들이 파견되어 치료 과정에서도 취조를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는 겁니다. 몸도 아프고 취조 까지 이중고를 겪었을 상황을 상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기록관 및 금남로 일대 518민주화운동 사적지 답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월앤금남로"를 6월 30일까지 진행함으로써 눈으로 보는 518을 한 발 더 나아가 눈과 체험으로 역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오월앤금남로는 518민주화운동의 발자취를 직접 돌아다니면서 느끼고 올바른 역사관을 함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전문 해설사의 설명과 오월 항쟁의 역사적 배경 및 전개 과정 등을 생생하게 체험함으로써 518의 잘못된 정보를 올바른 정보로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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