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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들 2기] 5.18 민주화운동 41주년 세대별 인터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5.18민중항쟁 관련 시민인터뷰)

페이지 정보

등록일
2121-05-21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425

본문

제41주년 5.18민주화운동

세대별 인터뷰.

5.18 세대,

5.18 다음 세대의 숙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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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41주년 5.18민중항쟁운동 행사위원회

온라인홍보단 오월이들 활동하는 프리참새에요.

이번 포스팅은 제 나름대로도

정말 뜻깊었는데요

각 세대별로, 제 주변의 친구들, 지인들, 가족들

그리고 이웃에게 직접 듣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더 뜻깊고 의미깊었던 시간입니다.


인터뷰 구성인단은

20대(대학생/프리랜서)

30대,40대 직장인

50대 간접적으로 5.18을 겪은 세대

60대 5.18을 직접 겪은 세대

이렇게 진행했습니다.

동생들과 회사 직원분들이랑

이런 진지한 이야기,

엄마아빠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그때당시의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 감회가 남다르더라구요.







20대, 30대, 40대 인터뷰

1.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나요?

2. 1980년 5월, 광주의 청년이었으면 어떻게 하고 있을거같나요?

3.5.18민주화운동 어떻게 하면 젊은층들이 더 많이 알 수 있는 활동이 있을까요?

4.관련 행사가 있으면 참여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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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동생들 자매단톡방에 물어봤어요.

아무래도 광주에서 자란 저희 세대들은

5월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초.중.고때부터 관련 수업이나

선생님들도 그날에 대해

본인들의 이야기도해주셨던거같아요.

저같은경우는, 고등학교 선배님이

5.18당시 헌혈하고 나오면서 총상을 맞아

돌아가신분이 계셔서 그 날이 되면은

학교에서도 자체적 기념행사를 했었어요.



동생들에게 물어봤던

20대의 세대별 인터뷰.






20대 대학생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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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나요?

A.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5.18민중항쟁에 대해서는 어렸을때부터 많은 방법으로 접해왔다.

어른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기도 하며, 교과서 수업 이외에도 학교가 5.18민주묘지랑 가까워서 현장답사도 가보았고, 초,중,고,대학교까지 5.18민중항쟁과 관련하여 과제가 늘 하나씩은 있어서 익숙하다.

Q. 1980년 5월, 광주의 청년이었으면 어떻게 하고 있을거같나요?

A.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의 청년들처럼은 맞서 싸우지는 못했을거같다. 앞서서 싸울 수 있는 용기가 나지않아서 뒤에서 후원하는 방식으로나마 도움을 줄 것 같다.

Q.5.18민주화운동 어떻게 하면 젊은층들이 더 많이 알 수 있는 활동이 있을까요?

A. 영화 택시운전사처럼 다양한 영화,드라마 소재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법이 가장 좋을거같다.

아직도 타지 사람들은 폭동이라고 알고있는것도 많기에, 실제 그 현장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것도 좋을거같다.

대학생 서포터즈활동으로도 있으면 좋을거같다.

Q.관련 행사가 있으면 참여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A. 영화나 드라마로 나오면 관람을 할 의향이 있다.

재미의 유무를 떠나서, 그 시절을 받아들이고 알아가는게 우리세대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20대 프리랜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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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980년 5월, 광주의 청년이었으면 어떻게 하고 있을거같나요?

A. 사실 잘 모르겟다.

영상을 보거나, 이야기를 듣고 책을 보면

너무 화나고 눈물나고, 있을 수 없는 일에 대해서

그 당시 행동으로 앞서준 선생님들이 있기에

이렇게 편하게 지내고있음을 알고있다.

하지만 과연 내가 그 상황에서,그 때 당시 청년들처럼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었을지는 감히 장담하지 못하겠다.

Q.5.18민주화운동 어떻게 하면 젊은층들이 더 많이 알 수 있는 활동이 있을까요?

A. 각 지역마다 3~5월에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영상이나 미디어홍보를 하면 좋을거같다.

아직도 잘못알고있는 젊은층들이 많기에 각 지역의 번화가에서 진실을 바로알 수 있게 전국구로 전시, 행사, 직접접할수있는 버스광고판, 지하철광고 등







30대, 40대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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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회사 같은팀내 직원분들에게도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30대 40대의 여성들로써

점심먹고 커피한잔하면서 이야기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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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답변을 해준, 직원은

전남대 졸업생인데

전남대안에서 과일, 아이스크림을 파는

어머님이계셨다고해요.(인문대 엄니)

원래 학교내에서 개인의 상업활동은 금지인데

관련 어머님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학생들을 숨겨주고, 재워주고,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광주의 여러곳에서 이렇게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각 세대별의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의

이야기들은 어느누구에게도 들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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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직원분 부모님의 지인분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눈 앞에서 총탄이 날아가는걸 보았는데

그 빛으로 인하여서? 그 순간의 열기?

순간의 총탄의 흔적을 봄으로 인하여

양쪽눈이 실명되셨다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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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답변을 해준 직원분은

어릴적 상무대 부근에서 살았는데

그때당시 분위기가 삭막하여서

집밖으로 가족들이 나가지도 못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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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 젊은층 세대의 인터뷰에서는

소위말하는 5.18이전의 세대는

교육으로 접한 세대입니다.

자연스럽게 지역의 일이라 관심도 가지구요.

공통적으로 5.18민주화운동을 더 알리기 위해서는

공연이나 드라마 영화 등 문화적 컨텐츠로

다가가야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영화 26년, 택시운전사만 보더라도

큰 맥락으로는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 10일간의 기간동안에도 다양한 사건들이 있어서

각기다른 매체로 이야기를 펼쳐서

문화로 알 수있도록 해야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50대 인터뷰(1980년 당시 초등학생.중학생)

1.1980년 5.18 당시 광주의 소식을 들었나요?

2. 그 당시 광주의 진실을 알게되었을때, 어떠셨나요?

3. 광주에 거주하면서 본 5.18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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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엄마는 함평출신으로

1980년 당시 초등학교 6학년때였다고 해요.

광주-함평이 1시간 이내의 거리로 가까웠어도

그 당시, 광주는 전화통화도 끊어놓을정도로

고립되었던지라 자세한 상황은

중,고등학교때 알았다고 해요.




50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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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980년 5.18 당시 광주의 소식을 들었나요?

A.그 때 당시는 국민학교 6학년이라 뭘 몰랐다.

집이 함평역 앞이였는데,

그 당시 역 앞으로 화물차에 대학생 삼촌들이

전두환정권타도 이런 깃발을 들고 있는 기억이 난다.

광주에서 큰 일이 있다고해서,

한 일주일가량?학교를 안갔었다.

어린마음에 친구들이랑

학교안가서 좋았던 기억이 난다.

Q.그 당시,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될때 어땠나요?

A. 몇년 뒤 중,고등학교에가서

수업시간에 들었던거같다.

어릴때 학교안가고 좋아했던 순간이 부끄러웠다.

Q. 광주에 거주하면서 본 5.18은 어땠나요?

A. 가족을 잃고 다치고 죽고..

억울한분들이 이렇게 많을줄 몰랐다.

그리고 어떻게 국가가 국민들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라는 분노감도 들었다.

광주에서 취직생활과 결혼을하면서

광주의 새 인연들로 알게된 그 날의 진실이

광주근교 도시인 함평에서도 제대로 몰랐는데

서울,부산,강원도 등 다른지역에서 아직도

역사왜곡되는 사실이

이 작은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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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빠 역시 1980년대 중학생이었는데

그때 당시 동네가 5.18민주묘지 근처라

학교를 가려면 (구)광주교도소를

항상 지나갔어야한다했어요.

동네에서 대학생 형들이

금남로로 가야한다고 버스를 타는데

교도소 인근 밖에서 검문중인 경찰들이나

군인들에게 들키면안되니까

대학생 형들이 버스바닥에 눕고,

그 위에 아빠와 아빠친구들(그때당시 교복을 입었으니까)이 형들 등위에 타서

그렇게 금남로까지 갔던적이 있다고했어요.

형들이 너희들은 오지말라고 신신당부했다면서...


50대의 인터뷰들에서는

저때당시 학생들이라서

옆에서 봤던 기억들이 전부인데

살벌했다. 무서웠다.라는 더 생생했음이

와닿았었어요.








60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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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동네에 특별한 분을 만났어요.

아빠의 고향선배이신 분이신데

5.18민주화운동 당시,시민군으로 참여했었고

신군부의 독침조작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7개월간의 징역생활을 했던 분의

생생했던 5.18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직.간접적으로 어떻게-가 아닌

실제 그 이야기를 들으니 참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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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당시, 전남도청에서의 생활

상무대에서의 생활

그리고 그 후부터 지금까지.

김용균 선생님의 5.18민주화운동은

지금도 진행중인 과제였습니다.

진짜 그 세대가 겪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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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980년 5월, 그때 겪었던 5.18은 어땠었나요?

Q. 그때당시 직접 민주화운동 참여를

어떠한 마음으로 동참하게 되었나요?

(이야기를 듣다보니, 해당 두 질문에 관한 내용이

통합적으로 합쳐졌습니다.)

1980년에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일을했어요.

군대문제로 광주에 내려왔는데 그 때 당시

광주에 무슨일이 일어났다- 이런생각을 못했어요.

집에 내려와서보니, 버스나 자동차가아닌

대포차가 돌아다니더라구요.

의협심이랄까, 친구의 편지로 내려와서

군대관련문제로 기다리면서

시내상황이 궁금해져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계속 도청에 있었고

교도소쪽에는(집을 가려면 교도소를 지나가야했음)

계엄군이 지키고있어서

도청밖으로 나가면 죽는줄알았습니다.

친구아버님이 겨우 데리러와서 집으로 갔는데

경찰이 와서 독침사건의 주동자로 몰려서 잡아갔습니다.

도청에 있을때 경비실 숙소에서 숙식했는데

어느 민간인이 전대병원에서 독침을 맞았다는

진술을 하더라구요.

그 주동자가 저, 북한의 간첩이라는 오명으로

동부경찰서로 잡혀갔습니다.

수사관들에게 조사만 받다가..

상무대로가서는 엄청난 고문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저는 운전도 못했는데, ,덤프차를 끌고와서

집을 부셨다느니 어쩌느니,

이런 이야기가 써져있었습니다.

저 사건은, 신군부가 시민군들끼리 서로 대립케하려는

계엄군측에서 투입한 프락치들의 소행이었죠.

그 때 당시는 정말 억울하고 그랬는데,

신군부의 도청지도부 교란작전으로 밝혀졌었습니다.

저는 그 사건의 주동자로 몰리면서

상무대에서 6개월동안 징역생활을 했습니다.

밥 세끼를 세 수저면 다 먹을정도로

영양실조 상태에.. 6개 방에 500여명을 집어넣었고

가족들 면회도 안되고, 집에서는 행불자로 처리된 줄 알고 옷이랑 다 태워버렸었다합니다.

상무대에 있다가 광주교도소를 갔는데

광주교도소는 밥이라도 제대로 줬네요.

1980년 5월에 잡혀들어가 12월 29일에 석방되었습니다.

석방 된 후에소 자유가아닌

집 거주지에서 일정거리이상 벗어나면

파출소에 보고를 하고 나가야했고

저는 계속 간첩이라고 오해를 받은거죠.

재취업도 안되었습니다.

소위말하는 빨갱이라는 꼬리표때문에말이죠.

취업이 안되어서, 농사를 시작했는데

우수농부로 선정되어 해외견학을 가야하는데

여권도 못만들었습니다..

이 누명이 김대중 대토령 정권때 진실이 밝혀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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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21년 5월, 지금의 5.18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정식적으로 5.18국가유공자가 된것은

실제 5년정도?얼마 안되었습니다.

간첩의 누명이 벗겨진것도 얼마안되었구요.

이제야 정식적으로 유공자가 된만큼

이 나라를 저희 세대의 청년들이 사랑했던만큼

나라도, 국민들도 우리를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5.18..

아직 끝나지 않은 진상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밝혀야할 진실이 한두개가 아니에요.

지금의 5.18역시 진행중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직접 5.18을 겪었던 세대로써, 다음세대들에게 전하고싶은 메세지가 있으신가요?

글쎄요. 저 역시도 뒤늦게 밝혀진 사실인데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사안들이

인정해주지않은 사건들이 안팎으로 많아요.

그래서 젊은층들이 진실을 마주봐야합니다.

다음세대들이 먼저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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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의 어린 나이에.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서 모진 고문을 받고,

그 여파로 미행에, 감시에 여권도 못만드셨던

5.18 민주화운동의 산 증인이셨습니다.


김용균 선생님에 관한 사료를

더 자세히 보고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 참고해보세요!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제가 1980년 당시의 광주시민이었으면

어떠한 행동을, 나설 수 있을까?

아니 심지어 도울수도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 스스로에게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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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분들덕에 편하게

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대에서

살수있구나 싶었구요.

씁쓸하게 웃으시면서, 조금은 허탈하신듯?

아직도 안밝혀진 사실들이 아주 많을거라고...하시는데

저희세대가 하나씩 안고가야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을 마주봐야하죠.

"5.18민주화운동 너무 어려워, 딱딱해,

지루해, 머리아프다~"

이런 의견을 말할수 있는거 역시

1980년 광주의 5월에서 희생당한 분들덕에

말 할 수 있는 자유이기에

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또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대별인터뷰를 통해,

직접적으로나마 간접적으로나마

5.18민주화운동을 겪은 이야기를 들어보니

5.18추모관에서 본 멘트가 와닿았어요.

"그대들이 열어주고,

우리가 열어가야 할 세상"

그 세상에 41주년이 지난 지금에도

안밝혀진 진실과, 지금도 진실을 거부하는 세대에게

더 다가갈 수 있게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여쭤볼게요.

5.18민주화운동 어떻게 생각하나요?


1980년 5월, 당신은 어땠을거같나요?


다음세대의 5.18민주화운동 어떻게 계승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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