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월이들 2기] 518민중항쟁 41주년 추모제에 다녀왔습니다

페이지 정보

등록일
2121-06-17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210

본문




518민중항쟁 41주년 추모제에 다녀왔습니다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811_9617.png


안녕하세요, 518민중항쟁 오월이 꼼꼬미냥입니다.

5월 17일 9시 반부터 518민중항쟁 41주년 추모제가 시작되었는데요.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행사로 지난 번에도 방문했던 곳입니다.

사실 지난 번에는 광주의 길을 몰라 헤메다가 결국 행사에 지각을 했었는데, 이번 추모제는 절대 늦고 싶지 않았어요.

전날 숙소에서 머문 뒤, 아침 7시쯤부터 서둘러서 달려왔습니다.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812_0185.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812_0794.jpg


다행히 시작 전에 5.18민중항쟁 추모탑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요. 하필 비가 주륵주륵 내리더라고요.

5.18민중항쟁행사위원회에서 우비를 준비해 주신 덕에 우산에서 조금 자유로울 수 있었어요.

9시가 지나니 41년 전 고귀한 생명을 잃으신 분들을 추모하기 위해 가족분들과 관련있는 분들이 한 분 두분 자리를 메우셨습니다.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812_1306.jpg


비가 부슬부슬 내리니 하늘도 함께 울어 주는 듯 한 기분이었어요.

누군가가 말씀하셨듯, 다른 지역은 가정의 달로 행복한 추억을 쌓아가는 5월은 광주에선 제사가 가장 많은 잔인한 달입니다.

오늘의 518민중항쟁 41주년 추모제는 사단법인 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주관하고 국가보훈처가 후원을 하는 행사예요.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812_2273.jpg


추모제는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에게 제례를 올리는 1부와 추모사와 추모시를 낭송하고 헌화 및 분향을 하는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어요.

많은 유족분들이 오늘 행사에 참여하셨어요.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812_3312.jpg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졔례상이 준비되었어요. 높게 쌓인 제례상을 보니 준비하신 분들도 정말 수고 많으셨겠구나 싶었어요.

9시까지 오는 것도 힘든 저로서는 이렇게 비오는 날 새벽부터 나와 준비하셨을 분들 역시 사명감으로 하셨겠다 싶더라고요.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812_4309.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812_5375.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812_5976.jpg


제 1부 추모제는 9시 30분에 시작하였는데요.

5.18 민주화 운동 희생자 제례

초헌 (사)5.18민주유공자 유족회 회장 김영훈

아헌 (사)5.18 민주화운동부상사회 회장 권한대행 장성암

종헌 (사)5.18 기념재단 상임이사 조진태

의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812_6873.jpg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38_7884.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38_8481.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38_9021.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38_9545.jpg


경건하면서도 엄숙하게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 대한 제례가 진행되었고, 모두가 희생자를 기리는 마음으로 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눈으로, 마음으로 새겼어요.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39_0488.jpg


많은 유가족분들도 빗속에서 아픈 눈빛으로 제례를 지켜 보셨습니다.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39_1064.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39_2065.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39_2651.jpg


1부 제례가 끝난 뒤 제례상을 치우며 현장을 정리하는 시간 동안 잠시 휴식을 하였는데요. 이 때 광주광역시장님을 비롯해 많은 국회의원들이 와서 유족분들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한 분 한 분 인사를 나누시는데, 취재진의 열기가 엄청 나더군요.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39_32.jpg


낯익은 얼굴이 보여 사진을 찍고 보니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시군요.

광주까지 내려와 유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추모제가 끝날 때까지 자리하셨어요.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39_3801.jpg


5.18민중항쟁 41주년 추모제 2부 순서가 시작되었어요. 개식선언과 국민의례가 있었는데요. 이번엔 검은 옷을 입은 시장님과 국회의원분들까지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습니다.

저도 "자리에서 일어서세요." 할 때 이 사진 한 장만 찍고 바로 국민의례에 함께 했습니다.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94_9631.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95_0199.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95_0893.jpg


높이 올라 펄럭이는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제창에 이어 묵념의 순으로 추모제는 이어졌어요. 조용하면서도 고요하게, 그리고 엄숙하게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95_1853.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95_2751.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95_3324.jpg


이용섭 광주광역시장과 송상락 전라남도 행정부지사, 원순석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상임위원장, 임성현 광주지방보훈청장의 추모사에 이어 유가족대표이신 김영훈 (사) 5.18민주유공자유족회회장의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3월 16일, 바로 이 5.18민주묘지에서 고 박병현 씨를 사살한 개엄군과 유가족 간의 고백과 용서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고백과 참여가 있을 때, 용서와 화해는 뒤따릅니다.

80년 5월, 우리 광주시민들의 희생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듯이 이제 '사과와 용서'를 통해 '역사의 응어리'를 풀고 희망과 통합의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원순석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상임위원장 추모사 중 발췌




작년 12월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허위사실 유포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어요. 이제는 부디 거짓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길 빌어 봅니다.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95_4255.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95_523.jpg


이후 광주시낭송협회의 5.18민중항쟁 41주년 추모제 시낭송퍼포먼스 공연이 이루어 졌는데요.

많은 시 중 몇 개 발췌했습니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5월! 광주의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 교 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전투 경찰이 군인들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미국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열두시 였던가.

(밤 열두시 였던가)

김남주 - 학살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95_6214.jpg


아아, 그해 5월 광주는

벌집처럼 쑤셔 놓은 붉은 심장이었다.

(붉은 심장이었다)

그해 5월 광주의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피의 강이었다)

그해 5월 광주는

제 살을 녹여 불 지핀 시민들이

쓰러져 죽으면서도 일어나 자유를 외쳤던

하늘같은, 하늘같은 펄럭임이 있었다

김준태 - 광주에 바치는 노래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3995_6783.jpg


금남로에 뿌려진 피가 굳어서 40년

생살이 찢기던 아픈 기억이 40년

분수대에서 뿜어올렸던 분노가 40년

아프면 아직도 가실 줄 모르고

지금도 온몸이 저려옵니다

해마다 오월 찔레꽃 피면

우리들 가슴의 피는 다시 솟구 칩니다

전원범 - 그때 함성처럼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067_8574.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067_9137.jpg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곳곳에서 어르신의 흐느낌을 듣게 되었는데요, 저에게도 어르신들의 아픔이 전해져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흘렀습니다.

대체 왜 그런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있어선 안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어찌보면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한 번 듣고 지나가는 이슈일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 고통이자 한입니다. 부디 함부로 쉽게 이야기하지 마세요.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067_9721.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068_0722.jpg


마지막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모두 일어서서 제창하였습니다.

1982년부터 우리나라 민주화의 상징곡으로 표현되고 있는 곡이죠. 지금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홍콩과 미얀마 등 민주주의를 희망하는 전세계에서 불리고 있습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068_1755.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068_2248.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068_276.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068_3717.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068_4732.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068_5693.jpg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113_6207.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113_6763.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113_7245.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113_8201.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113_9171.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113_9765.jpg


마지막으로 헌화와 분향을 끝으로 오늘 5.18민중항쟁 41주년 추모제 행사가 모두 끝났습니다.

오늘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나오셔서 헌화와 분향을 하셨습니다.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114_0317.jpg
909722e96225dd70b5f871f247efd4f6_1623914114_0783.jpg


모든 분들의 헌화가 끝나고 마지막 팀의 헌화까지 함께 하다 왔는데요. 마지막에 어머님의 흐느낌이 통곡으로 변하고, 그 과정을 보고 있는 제가 미워질만큼 심장이 아려왔어요.

어떤 위로도 통하지 않을 커다란 고통을 안고 41년을 보내 오셨구나 싶어 제가 더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너무도 몰랐어요. 너무도 무심했습니다.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진정한 사과가 선행되고, 용서 역시 따라야 합니다.

부디 역사를 왜곡하거나 되풀이하는 일은 결코 없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