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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들2기] 광주 518여행 기록관으로 떠나는 오월이들

페이지 정보

등록일
2121-04-26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35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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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여행 기록관으로 떠나는 오월이들

안녕하세요

오월이들의 유하예요

이번에 들려드릴 컨텐츠는 광주 518여행으로 떠나는

기록관 투어랍니다

해설사분의 설명과 함께 지난주 금요일 오후에

다른 오월이들과 함께 둘러보았는데요

아직까지도 지워지지 않은 흔적과 가슴시린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는데요

518민중항쟁의 시작인 5웡 18일부터 5월 27일

10일간의 항쟁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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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주소 : 광주 광역시 동구 금남로 221

( 금남로 3가 3-5 )

운영시간 : 매일 오전 9시 ~ 오후 6시

설날, 추석, 휴관

관람료 : 무료

☎062-613-8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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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금요일 오후 3시에 예약하여 약 한시간 가량

이곳을 둘러보기로 하였는데요

이날 오월이들의 광주 518여행에 기

록관을 함께

해설해 주실 김양순 선생님과 함께했답니다

입장하기에 앞서 들어오는 입구 바로 정면에

전시되어 있는 큰 유리창

1980년 5월 그때 당시의 이곳의 상황과 총탄의

흔적이 고스란히 있은 광주은행 건물의 창문을

고스란히 가져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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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계엄군의 통칸이 관통했던 광주은행 옛본점의

유리창인데요

광주은행은 총탄이 관통된 유리탕을 원형 그대로

사용하다 1997년 11월 광주 광역시에 기증했는데요

17년동안 이 총탄흔적이 있었던 유리창을 바꾸지

않았던 이유가 그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간직하는

생생한 자료이자 증거로, 그대로 두었다고 하네요


우리가 서있는 이곳의 뒤쪽은 그 당시 시민군과

계엄군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던 도로 한복판

그때 당시의 목소리는 이 충장로 온 곳곳에 울려

퍼졌다고 하지만, 기사하나 보도 되지 않았고

10일간의 항쟁이 시작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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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로 소개한 광주 518 사진은 옛전남도청

현재는 문화아시아전당이라고 불리우는곳

낯익은 전일빌딩도 보이는데요

민주화운동때의 사진은 아니고, 모였다하면

광주 시민의 암묵적인 장소라고 해요

지금도 여전히 그 장소에서 일전에 촛불시위가

열렸다한것 처럼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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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민주화운동은 5월 18일에 일어난게 아닌

5월 15일인 서울대학교 앞을 시작으로 전국구퍼져 나갔답니다

때문에 정확히 5월 18일에 딱! 이루어진게 아니라

시발점은 15일부터 점차 고저화 되기 시작 되었다고 해요

왜 하필 광주였냐 ?

우선 수도권인 서울과 지리적으로 멀리있었던곳이자

한지역을 선택해 북한의 소행이라는 루머를 퍼뜨려

군부체제를 확고히 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었기에

수도권과 먼 광주를 택했을거라고 짐작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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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를 시작으로 피바다가 몰아치기

시작한 충장로 일대

곤봉을 들고 무자비한 폭행과 첫사상자인

시각장애인 김경철씨

배웅하러 갔다 돌아가는에 계엄군에게 붙잡혀

시각장애인증을 보여주고, 빌고 빌어도 끝내

우스갯소리로 장난치며 조롱하며 목숨을

처참하게 앗아갔다고 해요

이렇게 첫 사상자와 여럿 부상자가 발생하자

학생들은 무장을 하고 다시금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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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띠를 두르고 총을들고 맞서기 위해 무장하고

나온 시민군에게 붙여진 "폭도"

그 당시의 보도에서는 계엄군의 폭행과 과잉진압을

싹다 다 배제한 광주 시민의 폭도라는 말로 포장해

계엄군의 악행이 더욱 강화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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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광주에서 직접 만들어 뿌렸었던 투사일보

이 일보안에는 행동강령이 다섯개가 적혀져

있었는데요. 그 중 네번째 행동강령

"계엄군이 발포하지 않은 이상, 발포하지 않는다"

민주화운동에 있어 정당방위를 실현하고자

광주 시민군은 이 행동강령을 준수하며 맞서 싸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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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당시 남자들은 가정을 지키기위해 밖으로

여성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 집을 지키는 역할을

했는데, 18일부터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기까지

아무 소식 없고 밥한끼 못 챙겨 먹은 광주 시민

그리고 계엄군을 위해 쌀을 씻고 밥을 짓기 시작하는데요

간단한 요깃거리로 채울 수 있는 주먹밥을 만들어

나가 챙겨주기 시작합니다

너나 나나 할것 없이 다 자식같은 마음에

광주시민, 계엄군까지 먹이며 27일이 지난 후에도

이 주먹밥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는데요

계엄군은 처음에는 이 주먹밥을 받아 먹다

나중에는 아예 거부하며, 선을 그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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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 학생들과 광주시민들은 어딘가로 끌려가고

아직도 알 수 없는 행방불명 되어 시신도 찾지 못한

분들도 100여명 남짓

그 중 아주 어린 아이들

4살, 5살, 6살 뭣도 모르고 끌려간 아이들의

시신은 더욱더 찾을 수 없었는데요

계엄군의 폭도가 유일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증거로 아마 학생들의 시신보다는 훨씬 더 멀리

그리고 깊숙히 유기했을거라고 하네요

어린 아이들은 대체 무슨 죄가 있길래 ..

또한, 헬기의 사격 역시 같은 이유로 발포명령을

전면 부인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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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10일간은 학살의 도시였도 이런 사실을

그대로 숨긴채 해외에서는 수면위로 드러났지만

그때 당시 해외방송을 얼마나 누가 많이 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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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우리나라에서의 방송에서는 북한군이 개입했다

라는 어처구이 없는 말로 광주 시민을 조롱했는걸요

그 당시 대부분의 시민은 북한에서 개입한 광수이며

제 1광수가 이 김군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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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방아쇠도 없는 총.

맞지도 않은 총알을 걸치며 이렇게 허술하게

채비하고 왔을까요 ?

518민주화 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섰었던 사람으로

이 사람을 본 사람은 많았지만, 정작 이름, 나이

아무것도 모르고 지금도 여전히 생사를 모른다고 하네요

이 분이 영화 '택시운전사'에 류준열 배우의 역할로

해석됐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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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0일간의 항쟁끝에 많은 사상자와

부상자가 발생하고 오는 5월은 가정이 달이기도

하지만, 광주에서는 가장 제사가 많은 달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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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현장에서의 참혹함을 그대로 증명하는

물건들은 이곳에 기부하여 진열되어 있으며

그때 당시 유일한 기록에 대한 자필은

영구적으로 보관하기 위해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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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여행으로 향한 기록관에서는 다함께

1층과 2층을 둘러보았는데요

4층까지 기록되어 있다고 하니, 나중에는

조금 더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와야겠더라구요

투어 역시 1시간였지만, 정말 시간가는줄 모르고

해설사님의 몰입감 넘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력도 샘솟았었던 아주 알차고 뜻깊은 시간이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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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보충하자면, 518관련 영화도 나열되어 있었는데요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택시 운전사'

그리고 계엄군의 작정명 '화려한 휴가'

아마 저도 이 중 한편을 관람할 예정인데요

해설사분께서 추천해두신 '김군'도 찾아볼까 싶어요

( 엄청 추천해주셨어요! )

이상 오월이들과 함께 하였던 광주 518여행

41년전의 생생함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으며

기록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 및 정기해설

가능하니 꼭 한번 들려보시길 추천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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