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들 3기] 5.18기념연극 그때 그 사람들을 보고 눈물 주르륵
페이지 정보
등록일
2222-06-21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06
본문
5.18민주화운동을 취재하면서 " 우리 아들이 컸으면 저 정도가 되었겠다" 란 오월어머니의 말씀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나도 자식을 키우고 있는 엄마이기에 그 아픔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풍요로운 삶 밑바탕에는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여 산화된 열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걸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역사가 아닌 우리 아이들과 그들의 후세까지도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나는 오월이로 활동하고 있다. 모처럼 주말을 맞이 한 나는 늘어진 살림살이를 뒤로한 채, 우리 동네 시민참여 연극인 그때 그 사람들 이란 5.18기념연극을 관람하러 발산마을로 향했다.
그림자 인형극인 그때 그 사람들은 5.18에 대한 기억이나 상황들을 이야기 나누자는 의미에서 기획하게 되었다고한다.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시민들과 시민 군들이 겪었던 일들의 행적을 따라가보면서 그들의 염원을 그려냈다.
공연장에는 아이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나도 딸을 데리고 올걸 그랬나 보다. 오늘 아이들이 공연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런지 나는 무척이나 궁금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을 무겁게 그리지 않고 친숙한 인형들과 그림자극을 통해 표현한 것이 무척 새로웠다. 광주의 슬픈 역사를 좀 더 친숙하고 어렵지 않게 연출했기에, 아이들과 관람하면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내년에는 꼭 딸아이를 데려와함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등장한 인물은 금희와 할머니였다. 금희는 맨발로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었다 그런 금희에게 할머니가 다가왔다.
금희는 그저 평범한 날, 엄마랑 행복한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계엄군이 들이닥쳤고 엄마를 끌고 갔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금희와 엄마는 계엄군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신발 없이 떠도는 금희에게 할머니는 보따리를 뒤져 신발을 찾아주었고 어린 금희는 뛸 듯이 기뻐했다.
금희는 신발을 신고 하늘에 있는 엄마를 만났고 행복해했다. 누군가의 아내, 딸이었던 평범한 시민들이 하루아침에 일상이 파괴되고 죽임을 당한 5.18당시의 상황을 담담하고 슬프게 그려냈다.
고 윤상원 열사의 이야기의 시작은 시골집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자식 걱정하는 모습은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지만 그들의 삶은 평범한 일상 그 자체였다.
밥도 안 먹고 광주에 올라가야겠다는 윤상원 열사의 모습이 비친다. 광주에 가면 어떤 비극이 일어날 것을 알기에 나는 당장이라도 말리고 싶었다. " 제발 가지 말라고 그냥 살면 좋겠다고" 나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슬프고 미친 듯이 억울했다.
5.18 시민 군의 대변인 윤상원 열사와 그를 따르는 어린 시민군들, 16세부터 19세 20세 26세 당시 윤상원의 나이는 고작 31세였다.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그들은 도청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남아 투쟁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나라면 죽음을 불사해서라도 도청을 지킬 수 있었을까? 나이만 먹었지 죽음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을 나는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나왔다.
윤상원 열사는 (1950년 8월 19일 ~1980년 5월 27일) 5.18민주화운동의 불꽃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생전에 노동자 배움터인 들불야학 교사로 활동했으며 시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준 투사회보 제작을 주도하였다고 한다. 또한 항쟁 지도부를 규합하면서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항쟁 마지막 날 5월 27일 새벽에 계엄군의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 임을 위한 행진곡은"은 바로 1982년 윤상원 열사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졌다. 화면에는 윤상원 열사와 산화되었던 시민 군들의 모습을 보여줬고 관객석에서는 흐느낌이 들려왔다.
연극이 끝나고 배우분들이 나와 인사를 하고 대담회 형식으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5.18 연극을 관람하러 온 학생들은 5.18 민주화 항쟁에 대해 학교에서는 배웠지만 오늘처럼 자세히 알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 아이들이 연극을 통해 5.18을 알고 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그 당시 5.18을 목격한 89세 시민분을 모셔 이야기도 나누었다. 어머니는 학생 두 명이 지나가다 계엄군의 총칼에 머리가 터지는 모습을 직접 목도하셨다고 한다. 정말 끔찍했다. 이런 사실을 왜곡하고 죗값을 받아야 하는 놈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공연이 끝나고 극단에서 준비한 선물을 받아왔다. 마스크와 " 도청을 지킨 새벽의 전사들"이라는 그림이었다. 집에 와서 딸에게 그림을 줬더니 엄마 나 마음 아파라고 말하는 아이, 아직은 어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내막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그 아픈 역사를 나도 열심히 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야 아직도 왜곡하고 거짓말하는 그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을 테니깐 말이다.
- 이전글[오월이들 3기] 5.18 공모사업 기념연극 그때 그사람들 새로웠던 느낌 22.06.23
- 다음글[오월이들 3기] 오월예술행사 518연주회로 들려준 광주정신 초청연주회 22.06.2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