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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들 3기] 전라남도 광주 여행 - 5·18 북구 사적지

페이지 정보

등록일
2222-06-08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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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Banff입니다 :)

세 번째로 소개해드릴 곳은 5·18 북구 사적지입니다.

순서대로 광주역 광장, 무등경기장, 망월묘역(5·18구묘지)입니다.




광주역 광장


오후 1시 즈음 도착한 광주역

143만명이 살고 있는 광주 도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무색하게도 광장은 무척 한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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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호남고속선이 개통되고 광주행 KTX 운행이 중단되면서 광주역의 입지가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2016년 12월 광주광역시가 광주송정역~광주역 셔틀 열차라는 대안을 내놓았으나 큰 도움은 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지금은 존폐 여부를 두고 자잘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지만, 한때 수많은 광주 시민들이 몰려 다니던 번화가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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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역 광장은 5·18 민주화 운동 시위대의 중요한 이동로였습니다.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도심으로 행진하고 귀교하는 과정에서 광주역 광장을 경유했습니다.

5월 18일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첫 번째 충돌이 발생하고 나서도 학생들은 광주역 광장을 지나 금남로로 이동해서 시민들에게 사태를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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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을 당시 광주광역시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계엄군은 시민들이 마음대로 나가지 못하도록 광주역을 점령하고자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광주역은 시민들의 활발한 소통 창구이기도 했지만,

타지 사람들에게 광주의 상황과 계엄군의 폭력적인 행태가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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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무등경기장에서 출발한 차량 시위대가 광주역을 통해 금남로로 향하자 곧바로 계엄군이 배치되었고,

작전처가 실탄을 싣고 광주역으로 이송하려고 하자 시위대가 계엄군을 막아섰습니다.

계엄군은 진로를 확보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집단 발포를 자행하였으며 이때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실제로 명단은 공개된 바 없지만, 병원 기록 등은 남아 있었습니다.




무등경기장


1982년 해태 타이거즈를 시작으로 2013년까지 KIA 타이거즈의 홈구장으로 쓰였던 무등경기장

비록 지금은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로 바뀌었지만, 야구 좀 보셨던 분들은 당연히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야구가 아니어도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한 적이 있다면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택시운전사에서 주인공이 계엄군을 피해 몰래 타지로 빠져나가려고 했던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비록 저는 택시운전사를 본 적이 없지만, 그 부분만큼은 아주 잘 알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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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 운동은 많은 희생자를 낳았습니다.

계엄군은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던 운전사들에게도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습니다.

운전사 중에도 시위자가 몰래 잠입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억측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운전사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민주 열사들과 함께 시위에 가담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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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오후 5시 운전사들은 무등경기장 정문 앞에 모였습니다.

일제히 헤드라이트를 켜고, 본 대열은 임동을 관류하는 서림로를 따라 광남사거리로, 일부 차량은 광주역 방면으로 우회하여 광남사거리로 이동했습니다.

다시금 하나가 된 차량 행렬은 금남로 5가까지 진출했으며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로 하여금 계엄군에게 맞서 싸울 수 있는 의지를 안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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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사적은 무등경기장 맞은편에 있습니다.

버스에서 하차하고 임동 안전센터 쪽으로 건너가시면 돼요.

저는 하필 버스가 진입 중일 때 발견해서???? 멀리서나마 찍어봤습니다.




망월묘역


망월묘역은 광주도시공사에서 관리하고 있는 묘지공원으로,

망월묘역 말고도 5·18구묘지, 민족민주열사묘역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1980년 5월 당시의 공식적인 명칭은 ‘광주시립공원묘지 제3묘역’이었다고 합니다.

간혹 언론 매체에서 정치인들이 이곳에 참배하러 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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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망월묘역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광주 외곽에 위치한 평범한 시립 묘지였습니다.

하지만 5·18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성격이 조금 달라지게 되는데요.

1950년 6월 즈음 이곳에 5·18 민주 열사들의 시신이 안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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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은 전남도청을 점령한 이후 희생자 시신 처리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5월 27일부터 6월 6일까지 약 2주 동안 검사와 군법무관 등에게 시신 검안을 맡기고, 검안을 마친 시신들 가운데 가족이 직접 찾아간 경우를 제외하고는 망월묘역에 일괄 매장했습니다.

시신들은 차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남 6913호 덤프 트럭에 실려 이동되었습니다.

시민들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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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에는 제3묘역에서 129구에 대한 장례가 치러졌으나 ‘폭도’로 분리되었던 민주 열사들에게 제대로 된 예우가 갖춰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5·18 민주화 운동이 채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시민들은 자유롭게 장례에 참가할 수도 없었습니다.

언제 계엄군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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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무관 61구, 도청 26구, 국군통합병원 16구, 교도소 앞 1구, 광주역 6구, 효덕동 4구, 광주고등학교 앞 2구 등 총 116구로 추측되었는데,

1985년 정부가 발표한 민간인 희생자 수가 164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희생자들의 시신이 완벽하게 파악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정부의 입장을 믿을 수 없었고, 여전히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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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묘역은 교통이 상당히 불편한 곳입니다.

저는 518 버스를 타고 왔는데, 배차 간격이 무려 40분이었습니다. (주말 1시간)

버스도 518, 충효188 말고는 아예 안 다니더라고요.

1시간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나 변두리에 있어서 그런지 왕래는 쉽지 않았네요.

광주 시민 분들은 그냥 자차 끌고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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