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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들 3기] 518민중항쟁 오월어머니집 양림동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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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222-06-10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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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중항쟁 오월어머니집 양림동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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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4월의 끝자락에 저는 다시 광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어요.

4월인데도 땀이 송글송글 올라오더라고요.

오늘은 오월어머니집이 있는 양림동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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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에 가는 방법은 남광주역 혹은 문화전당역에서 슬슬 걸어가면 됩니다.

저는 남광주역에 내려 슬슬 걷는데 이렇게 예쁜 공간이 있는 줄 몰랐어요.

우다찻집과 연결되어 시장까지 연결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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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일찍 왔으니 식사 먼저 해 보기로 했어요.

광주에 오면 오리탕을 먹어야 한다는데, 양림동 초입에 1인분씩도 판매하기에 들러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움직여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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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에 가볼만한곳이 참 많지만, 저는 오늘 오월어머니집에 방문하기 전에 선교사들이 계셨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이곳에는 100년된 호랑가시나무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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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일선선교사와 피터슨선교사, 허철선선교사와 브라운 선교사의 사택이 있는 곳입니다.

우일선선교사사택은 1920년대에 지어진 집으로 광주 기념물 15호라고 해요.

딱 서양식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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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과 길이 아주 예뻐서 셀프웨딩사진을 찍는 분들이 많이도 방문하시더라고요.

저도 걷는 내내 힐링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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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들의 집 중 아마도 유일하게 선교활동에 쓰이고 있는 허철선선교사 사택입니다.

허철선선교사은 1980년 광주에서 참혹한 현장 사진을 찍어 해외로 최초로 송출해서 잔혹한 현실을 알리셨던 분이라고 해요.

올해 마지막으로 보는 예쁜 벚꽃도 실컷 구경하고 오월어머니집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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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에 위치한 오월어머니집은 대문이 활짝 열려 있어요.

사실 뭔가 낯설어 쉽게 들어가도 될까 생각하게 되지만, 네!! 방문하세요!! 얼마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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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처음에는 들어가도 될까 망설였었는데, 방문을 환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지나갈 때 차 얻어 마시러 들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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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플지도 모른다며 떡과 과일을 푸짐하게 준비해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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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오월잔에 커피도 주시고, 맛난 다과를 준비해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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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김형미 관장님과 이정덕 사무총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친절하게 저희를 맞이해 주셨지만, 오늘 방문한 오월이들이 모두 조용하고 낯을 가리는 사람들이라 말을 잘 못해서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그래도 큰 용기를 내어 질문 몇 가지를 드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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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어머니집은 1980년 당시 계엄군에 의해서 자식, 남편, 형제, 자매, 부모를 잃거나 혹은 본인이 직접 고초를 겪ㅇ은 어머니들이 모여 만든 단체로 사무실같은 곳이라고 하기보다는 집 개념으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수고하신 어머니들이 이 곳에 와서 편히 쉬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마음의 위로를 나누는 집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래서인지 두 분 모두 뵙자마자 푸근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요.

518민중항쟁 오월어머니집에 함께 하고 계시던 어머니들 중 1980년 당시 자식을 잃으시니 어머니들께서는 이미 팔십, 구십대 이신 분들도 계시고 돌아가신 분들도 많아요.

남편을 잃으신 분들은 60대 ~70대, 형제, 자매를 잃으신 분들은 5 ~ 60대가 되신 분들이 많다고 해요.

관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42년이 세월이 결코 순탄치 만은 않았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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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에 어머니들이 오월어머니집에 오셔서 오전과 오후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중간에는 점심도 함께 드시는 공동체 활동 등을 진행하고 계시는데요.

오월어머니집의 가장 큰 행사는 5월 어머니상 시상식이 있는데요. 매년 5월에 열리는 이 행사는 작년과 재작년은 코로나로 인해 10월에 진행되었어요.

5월 어머니상은 5.18 정신을 계승하는 사업 중 가장 크고, 5.18관련자가 아니더라도 민주화 운동을 하신 분들을 한국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발굴 및 추천하고 시상을 하고 있는데,

단, 5.18 관련자가 아닌 분들 중 숨은 공로자들을 찾아 그 정신을 기억하고 시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먹밥 행사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5.18의 대동정신을 어머니들이 계승하고 실천하기 위해 금남로에서 주먹밥 만들기와 나눔을 실천할 예정이죠.

현재는 5.18 당사자 분들이 직접 활동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들의 2세들이 그 정신을 이어받아 계속 이어갈 계획이라고 해요.

올해는 5월 17일 금남로에 오월어머니집 부스가 마련되고 그 곳에서 수천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을 만들 예정이니 누구든 방문하셔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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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다과와 대화를 나눈 뒤, 먼저 이정덕 사무총장님의 사연을 듣기로 했어요.

이정덕 사무총장님의 남편은 시민군으로 활동한 고(故) 이강화 화백이예요.

우리집 남편은 5.18 당시 대학교를 졸업하고 조대 미대에 다시 입학해 다니고 있었어요.

영암의 집에 내려가 있다가 518가두방송을 듣고 안되겠다 싶어 주변 사람들을 모아 광주로 향했어요.

송암동으로 향한 그 당시가 21일이라 이미 길은 막혀 있었죠. 군인들이 총을 쓰는 통에 진입을 못하고, 강진으로 가서 소총을, 해남에서는 수류탄을 가져 가 다시 광주로 진입을 시도했었어요.

이후 많은 고초를 당했고, 최후에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받았다가 87년에 복권이 되었으나 전에 지명수배 되었던 것이 기록으로 남아 이강하 화백님의 앞길을 번번히 막게 됩니다.

그렇게 작가 활동에 집중했으나 나중에는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병환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후에 이정덕 이사장님이 이강화 화백의 그림을 기증해 역사문화마을 조성사업으로 이강하미술관이 생긴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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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김형미 관장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오빠가 희생당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셨어요.

고향인 벌교에서 광주의 대학교를 다니게 된 오빠가 고향에 들렀다가 5.19일 음식을 가지고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가던 중 공수부대원 8명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셨다고 해요.

하도 많이 맞아 실신하게 되자 길에 버려 두고 갔다고 하는데요. 후에 집주인이 연탄광에 숨겨 놓고 시골에 연락하셨다고 합니다.

이후 7년 간이나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셨지만, 정신병원에 있다가 돌아가셨다고 해요.

원래 부모님들을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죠. 평생 먼저 보낸 아들을 그리워 하셨답니다.

그러한 시간을 보내셨던 분들이 더 많이 계시다고 생각하니 제가 더 눈물이 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가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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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번호 1-1번의 김경철씨 어머님은 올해 93세로 아버지를 잃은 손녀를 딸처럼 키우셨다고 해요.

청각장애가 있던 김경철씨는 당시 공수부대에 의한 첫번째 희생자였죠. 며느리도 집을 나간 뒤 그렇게 고생을 하며 키우셨어요. 손녀분은 할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42년의 고통스러운 세월을 과연 돈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요?

간첩들이 그랬다더라, 518관련자들은 보상을 많이 받았더라, 보상금으로 다달이 연금을 받는다더라 라는 식의 거짓 뉴스들이 아직까지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특히 "5.18 그만 우려 먹어라 지겹다" 식의 말은 진짜... ㅡㅡ;;

아니요. 518은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발포명령을 한 사람도 밝혀지지 않았고, 사과 역시 없는 현재진행형.

국군통합병원에 비가 내릴 때면 배회하는 분들이 아직도 계시다고 해요. 그런 트라우마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어떻게 끝났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책임자처벌과 제대로된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5월은 누군가에게는 가정의 달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겠지만, 5.18 당사자들에게는 없었으면 하는 달인 것이죠.

"달력에 5월이 없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님들이 떠올라 다시 눈시울이 붉어 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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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많은 사례들을 전해 들으며 더 죄송하고 민망한 마음이었어요.

오월어머니집에는 오월의 아픔을 함께한 사람들의 이름을 건물 안에서 볼 수 있어요.

그리고 건물 밖에는 오월어머니들의 성함 역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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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어머니집에는 어머니들의 손길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직접 만드셨다는 귀여운 인형들이 조르륵 놓여 있는 것이 너무 귀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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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는 어머니들이 직접 가꾸고 있는 작은 밭이 나왔어요. 얼마전 씨를 심으셨다고 해요. 작은 텃밭이 참 정겹다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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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는 5.18민주인권 작은 도서관이 오픈되어 있어요.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어 방문해서 자료들을 보는 것도 좋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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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에는 어머니들이 그림을 그리며 치유활동도 이어가고 있는데요. 직접 그린 작품들이 걸려 있어요.

그림은 화려하고 따뜻하지만, 할 수 없게 된 일에 대한 희망과 꿈 등을 이야기하고 어머니들의 사연 또한 담겨져 있어 작품을 하나하나 김형미관장님의 설명에 따라 보면서 따뜻함과 아픔이 함께 전달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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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가슴아픈 사연들과 견뎌낸 시간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해 주시고, 오월어머니집을 소개해 주신 김형미 관장님과 이정덕 사무총장님의 사진도 한 장 남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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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의 손길로 하나하나 제작하신 아름다운 하트 조형물과 마당에 심겨진 꽃에 이끌려 방문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하는데요.

오월어머니집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갖은 고초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노력하셨던 민주어머니들의 쉼터로 2006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문을 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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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들께도 편한 쉼터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지만, 누구나 편하게 찾아 올 수 있는 어머니집이 되도록 하자하며 운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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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며 목이 마를 때, 차를 마시고 싶을 때 따뜻한 마음으로 반겨 주시는 곳이랍니다.

코로나 때문에 한 동안은 방문이 어려웠으나 이제는 누구든 편한 마음으로 방문하시면 어머니들께서 밝게 맞이해 주실 거예요.

양림동에 방문하셨다면 민주화를 위해 힘쓰셨던 어머니들의 공간 역시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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