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로 518여행 유네스코 증명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안녕하세요. 이제는 518여행에 관심갖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에서도 광주에 갈 일이 생기는 분들은 어디로 가면 좋을까 저게에 물어 보는 분들도 종종 있어서 제가 다 좋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오늘은 금남로 일대에서 518여행으로 가보면 좋을 곳과 근처의 맛집도 함께 소개해 드리려 해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봄. 저는 광주로 향했습니다.
KTX를 타면 서울에서 2시간이면 충분해요.
저는 이 시간 동안 일을 하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한답니다.
마지막 역이라 귀 막고 푹~~ 자고 나면 도착해요. ㅎㅎ
518여행을 어디로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라고 생각하신다면 KTX광주 송정역 바로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들러보세요.
이곳에서는 맛지도와 함께 가볼만한 곳에 대한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그리고 금남로 일대에서 할 수 있는 518여행에 대해서도 정말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기 때문에 추천!

저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역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이곳에는 1980년 5월에 광주 시민들이 모여든 분수대와 옛전남도청이 함께 있고, 오늘 방문할 금남로가 위치하고 있죠.
그리고 전일빌딩과 518기록관도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문화전당역 - 전일빌딩 -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순서로 보시거나 거꾸로 오는 방법도 좋을 것 같아요.
정순서로 방문할 경우에는 아시아문화전당역에서 내리면 되고, 거꾸로 518기록관부터 방문할 생각이라면 금남로 4가역에서 내리는 편이 좋답니다.

전일빌딩의 꼭대기 전일마루에 오르면 분수대와 옛 전남도청이 정면으로 보여요.
이곳에서는 매일 5시 18분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흐른답니다.
이곳은 서울로 따지면 광화문 같은 곳이예요.
집회를 열거나 행사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집결하는 곳이죠.
일빌딩 9층에서는 5.18의 처음과 끝이 타임라인별로 순서대로 자세히 적혀 있어 천천히 읽어 보면 도움이 되죠.
그리고 당시 헬기 사격의 증거인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동안 모아 둔 증언과 기록 등도 아카이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증거와 더 많은 내용을 확인하고 싶은 분들은 위의 포스팅에서 확인해 주세요~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
영업 시간
매일 09:00 ~ 18:00
문화해설시간 10시, 11시, 14시, 15시, 16 : 30분
문의 전화 062-613-8204

오늘 본격적으로 방문하고자 하는 금남로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입니다.
이곳의 정문에는 518사적지임을 알 수 있는 비석과 함께 518기록관에 관한 설명을 확인할 수 있어요.
이곳은 1980년 당시의 기록과 증거 등을 모아 기록하고 전시한 곳으로 당시 한국의 기자들과 외신 기자들의 필름이나 수첩, 신문까지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당시에는 카톨릭센터가 위치해 있어 조비오신부님을 비롯해 그 날의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하죠.

이곳은 1980년 당시의 기록과 증거 등을 모아 기록하고 전시한 곳으로 당시 한국의 기자들과 외신 기자들의 필름이나 수첩, 신문까지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당시에는 카톨릭센터가 위치해 있어 조비오신부님을 비롯해 그 날의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하죠.
80년 그날에 대한 영혼의 기록이라는 작품 역시 518기록관 앞에 서 있으니 보고 가면 좋겠습니다.
금남로의 518여행이 어렵다면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바로 옆에는 오월길 여행자센터가 있어요.
이곳에 문의하면 역시 관련 자료들을 받을 수 있고, 안에 있는 책들도 읽어 볼 수 있어요.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518기록관 건물 안에서 방문이 가능하답니다.

1, 2층은 해설을 해 주시니까 듣을 수 있는데요. 518기록관의 해설은 직접 방문해서 신청해도 좋아요.
해설 전후에는 3 ~ 6층에 있는 기록을 보는 것도 좋죠. 저는 6층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가며 보려 합니다.
당시 카톨릭센터 였던 518기록관의 6층은 윤공희 대주교의 집무실이 있어요.
당시에 어떤 생활을 하셨는지 확인할 수 있죠.
1980년 5월의 현장은 광주가 봉쇄되었고, 시민을 지켜야할 군인들이 총과 칼을 들고 시민에게 겨누었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윤공희 대주교는 19일 서울로 올라가 김수환 추기경에게 처참한 현장 상황을 알렸고, 김수환 추기경은 계엄군의 만행을 멈출 수 있도록 여러분을 만나 협조를 요청했어요.
27일 새벽 윤공희 대주교는 광주대교구의 사제들과 함께 "광주사태의 진상"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성명서를 제작하고 배포한 신부 8명이 보안대로 끌려갔어요.
게다가 김성용 신부님과 조비오 신부님은 '내란중요임무 종사자'라는 어처구니 없는 죄명으로 군사재판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성당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어요.
5층은 수장고로 저희가 방문할 수 없고, 4층에는 자료열람실이 있어요.
5.18과 관련하여 많은 자료를 들어가서 빌리거나 읽을 수 있죠.
어느덧 해설 시간이 다 되어서 1층으로 내려왔어요.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은 1980년에도 있던 곳으로 바닥과 벽면 모두 그 때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요.
시간이 흐르는 것에 따라 누렇게 변한 곳도 많이 있지만,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지요.
그리고 그 날의 흔적 2번째를 보자면 총탄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광주은행에서 총탄이 관통되었던 유리창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1997년 이전하면서 기증한 것입니다.
흔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ㅠㅠ

해설을 듣기 위해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아까 보았던 분수대에 빽빽하게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시민들을 볼 수 있습니다.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10일간의 기록.. 함께 들여다 보시죠.
1층의 상설전시길에는 5.18 민주화 운동이 왜 시작되었는지의 배경이 서술되어 있어요.
물론 그 전부터 긴 이야기가 있지만, 5.14일의 흔적부터 확인해 보죠.
계엄 이후 이 때까지만 해도 전국적인 평화시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5.18일부터 금남로가 피로 물들기 시작했죠.
17일 밤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고, 전국의 주요 대학에 계엄군을 배치에 시위를 하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어요.
이 당시 165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영상입니다.
사망한 분들을 확인하다 보면 학생들이 많고 대부분 총상과 타박상으로 총이나 진압봉인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리고 거의 21일과 27일에 도청 주변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대다수였습니다.
하.....
처음부터 광주로 들어온 군인들이 초기 진압을 위해 차출된 공수부대로 학생들을 상대로 처음부터 잔혹한 진압하면서 시민들까지 항쟁에 합류하게 되었던 것이죠.
비무장한 시민들을 상대로 21일 집단 발포가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많은 부상자와 희생자가 생겼던 것이죠.

그로인해 병원에는 환자들이 넘쳐났고, 피가 부족한 상황에 많은 시민들이 헌혈을 위해 병원에 모여 들었어요.

광주가 봉쇄된 상황. 언론통제로 인해 뉴스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아니라 광주에 북한의 간첩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난무했죠.
이게 들불야학은 투사일보를 만들어 배포하였고, 행동강령도 적어 배포했어요.
대동세상.
이 함지박은 518민주화운동 당시의 광주의 공동체정신을 보여 주는 것인데요.
이 안에 광주의 어머니들은 골목길에 모여 밥을 짓고, 주먹밥을 만들어 담아 다니며 시민군 차량에 나누어 주었던 것이죠.
이 당시 광주는 난장판이었지만, 사재기나 약탈, 강도가 없었다고 해요.
시민군이 나서서 질서유지에 힘섰던 것이죠.
그날의 금남로를 형상화한 거리.
도청 앞의 금남로에는 주인잃은 신발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고 하는데요.
시신을 저렇게 수레나 청소차로 이동시켰다고 해요.
당췌 어디에 묻었는지 알 수 없는 분들도 계시다고 하죠.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잔혹하고 끔직한 그 날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가 있을까요...

2층으로 올라왔습니다.
이곳은 당시에 관한 기자들의 수첩과 필름, 그리고 시민들의 기록물을 확인할 수 있고,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록 또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서 언급했던 것처럼 1980년에 갑자기 광주항쟁이 시작된 것이 아니었어요.
518민주화운동 전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한 안내가 먼저 적혀 있더군요.
1979년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암살당하고 유신정권이 끝이 나고,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는데, 그 때 전두환과 노태우가 속한 '하나회'가 계엄사령관을 강제 연행 후 군권을 장악해 버렸죠.
이후 최규하 대통령을 압박해 12.12 쿠테타에 대한 사후 승인을 받아 정권을 찬탈했어요.



1980년 5월 전국의 대학에서는 계엄해제와 민주화를 염원하는 시위가 계속해서 일어났고, 5월 15일 서울역 광장에 10만 여명이 밤 늦도록 집회를 열었으나 군이 개입할 명분을 주지 말자며 자진해산을 했다고 해요.
이 때의 회군은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의 비상계엄 확대와 5.18사태를 계기가 되었다고 해요.

사진으로만 봐도 공수대원의 곤봉에 맞아 피를 흘리며 끌려 가는 시민들과 무릎꿇고 위협을 당하는 시민의 사진만 봐도 끔찍한데, 사진은 멍쩡해 보이지만, 당시 사망한 김경철씨의 검안서에는 "뒤통수가 깨지고, 눈이 터져 튀어나오고, 팔과 어깨, 엉덩이와 허벅지가 으깨져"라는 문구가 있어 정말 무식하게 맞아 사망한 것을 알 수 있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김현경님의 일기장이예요.
제목이 '무서움'과 '공포'입니다. ㅠㅠ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록물은 국가기관이 생산한 5.18민주화운동 자료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자료, 군사재판 판결문, 시민들이 생산한 성명서와 선언물, 취재수첩, 시민들의 일기, 필름자료, 시민들의 기록과 증언, 피해자들의 병원치료기록,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회의록, 국가의 피해자 보상자료와 미국의 5.18관련 비밀해제 문서가 포함되어 있어요.

왼쪽은 처음 기사지만, 시민들이 받아서 본 신문은 오른쪽입니다.
광주의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만 볼 수 있었던 것이죠.


왼쪽 역시 마찬가지예요.
우리 나라 신문들이 저렇게 검열을 통해 진실을 가리는 동안 해외에는 광주사태가 낱낱이 기록되고 있었습니다.



광주의 시민들이 총을 들 수 밖에 없던 이유.
얼마 전에 우연히 본 방송이 하나 있는데, 인요한교수님의 5.18 경험담을 이야기 해 주시더라고요.
교수님은 25일에 광주에 들어 오셨다고 해요.
7번의 검문을 거쳐 광주로 오셨는데, 파란눈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 가능했던 것이었죠.
광주의 양림동에 선교사들이 많이 있었기에 안전한지 확인차 방문하는 미대사관 직원인 척 하고 들어와 외신기자와 시민군 사이에서 통역을 해 주셨다고 하더군요.


5.18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영화, 드라마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요.
당시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한 편씩 보면 더 도움이 될 듯합니다.

광주의 기록물들이 유네스코에 등재되기까지의 서사 역시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근현대사에 관심없어 제대로 흐름을 보지 못한 1인으로서 저의 경우 518여행의 시작은 현장과 그 흐름을 아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를 제대로 보지 않고는 미래도 없는 법이죠.

우리네 오월에는 목련꽃보다 더 하얗고 순결한 영혼,
영혼들이 꽃잎처럼 아프게 떨어진 것을...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주변에는 맛집이 많이 있어요.
이곳은 바로 뒷편에 위치한 '참뫼'라는 곳인데, 푸짐하고 맛있는 쌈밥이 1인당 7,000원!
싱싱한 야채는 물론 푸짐한 고기와 찰밥까지 주시는데 완전 감동이더군요.
광주에 내려왔으면 푸짐한 한식 강추!!!


건너편 역시 맛집은 많습니다.
이곳은 가성비 좋은 쪼아저씨네 파스타!
메뉴 2개 이상 주문하면 피자가 서비스!!
가족과 함께 518여행을 하고 있다면 함께 방문해도 좋겠죠?



바로 앞집에 있는 전국 3대 크로칸슈 맛집 '사오' 역시 줄 서 먹는 맛집으로 바삭한 크로칸과 부드러운 슈가 예술이예요.
지나면서 방문해 보면 딱! 좋을 법하답니다.
참고로 영수증 리뷰하면 크로칸슈 1개를 서비스로 주시더라고요. ㅎㅎㅎ
맛집도 많고, 역사도 바로 알 수 있는 금남로 518여행.
가족과 함께, 혹은 커플로, 혹은 혼자서도 추천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