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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들 3기] 5.18민주화운동 타임라인 역사적 사건 배경 되새겨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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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222-04-26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248

본문


5.18민중항쟁 사건의 배경

10일간의 5.18민중항쟁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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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5.18 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

오월홍보단으로 활동중인 물방개에요.

5.18민주화운동에 관련된 컨텐츠들을 소개해드리면서

저 역시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공부를하고있다 생각하게되는데요

이번주 미션은 " 5.18민주항쟁"을

소개하는 내용이었어요.

사건의 배경/5.18진행과정 등 직접 그 곳을 다니면서

저 역시도 역사적 사건의 타임라인의

개념정립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대략적인 큼직큼직한 틀은 알고있었는데

세부적으로는 저도 이번기회로 공부하게 되었네요!







1.5.18 민중항쟁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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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사건의 배경으로는

단순히 1980년도에 광주에만 국한되었던 일이 아닌

1970년대 박정희 정권때로 거슬러 올라가야합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피살사건으로

유신체제가 붕괴되면서

군부독재/국민들의 대립체계가 반영된 사회적 배경과

1980년 5월까지 비상계엄 전국 확대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격동기가 5.18민주화운동의 배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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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쿠데타로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은

(국군보안사령관 합동수사본부장때)

학생들의 시위와 시민들의 저항을

군대로 동원하여 진압계획을 세웠으며,

5월에 들어오면서 대학가에서는 "비상계엄 해제"

"전두환 퇴진"을 외치며 모여들었으며,

신군부는 북한의 남침하려 한다는 첩보를 조작하여

위기감조성 등으로 비상계엄령이 확대되었습니다.

경찰은 전국학생회장단 모임이 열렸던

이화여대를 급습하여 학생대표를 연행하며,

전국적으로 검속을 실시하여 2,700여명의

학생과 반정부 인사를 강제적으로 연행하였으며,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권좌에 오르기위핸 술책으로

각 지역별로 군 병력 배치와, 계엄병력 배치 등

광주에서의 시위가 격화되면 군부대를 동원하여

진압할 준비를 철저하게 갖추고 있었다고합니다.

5.18에 시작된 광주의 비극은 이미 준비되어있던것처럼

신군부는 군대를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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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의 대학들을 시작으로

국민연합 성명발표와, 학원민주화 계엄령 해제요구가

전국에서 빗발쳤던 5.18일 이전의 배경들입니다.

전국 27개 대학 총학생회장 가두시위 결의와

전국의 학생대표와 전국대학총학생회장단 회의 중

연행되기까지 광주뿐만아니라 1980년 전국에서

민주화에 대한 갈망이 이끌었던 격동의 배경이었습니다.

유신체제 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찾아온게아닌

신군부라는 군부대의 정권장악으로

더 긴장감이 고조되고, 민주화를 더욱더 갈망했던

시절이었다고합니다.




2. 10일간의 5.18민중항쟁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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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5월 18일. 오전 9시 40분.

5월 14일-16일 민족민주화성회에서

광주학생들과 시민들은 비상계엄이 확대되면

도청 앞 분수대에서 모이자는 약속을하며

광주지역에서는 도청앞 분수대로

계엄해제. 휴교령철폐를 외치며 시위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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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해제.휴교령 철폐를 외치는 학생과 시민들에게

광주로 내령노 공수부대원들은 곤봉을 휘두르며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광주 중심가에 공수부대가 등장하면서

무자비한 진압작전으로 시민들이 다치고

통행금지시간이 9시로 발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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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도 모른채 구타되었던

최초의 사망자 청각장애인 김경철님이 사망함으로써

시민들의 희생이 하나둘 시작되었는데요,

시민들 수가 늘어나면서 공수부대원들이랑

맞서싸워갔다고 합니다.

나라를 국민을 지켜야할 군인들이 시민을 향하여

무차별한 폭행과 폭력은 국가폭력사태였던거죠.

보호받아야할 국민들은 폭행속에서 공포에 떨었던

광주의 1980년 5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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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역 광장은 5.18사적지 2호로써,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과

계엄군 사이에서 가장 치열한 공방전이

벌여졌던 곳이라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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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가 가열된 5월 20일밤에,

광주역에 주둔하던 계엄군은

유혈진압에 항의하던 비무장 시민들에게

발포, 다수의 사상자를 내었으며 이 곳에서

2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해요.

이 시신들이 전남도청 앞으로 옮겨지자

시민들은 더욱더 민주화운동에 적극동참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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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에 있어서 가장 격렬했던 곳이

금남로 거리인데요.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서

5.18민주화운동 기간 중,

가장 격렬하게 저항했던 항쟁의 거리입니다.

그래서 관련행사들은 주로 이쪽에서 주최하게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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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가톨릭센터앞에서의 시위부터

5월 19일 시민들이 모여든 계엄철폐 투쟁

5월 20일 택시와 버스기사님들의 차량시위

계엄군의 집단발포전까지 광주시민들이 매일 모이고

군사독재 저지와 민주화를 촉구하였던 금남로는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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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는 구,광주MBC방송국이 있던 자리인데요.

계엄 하에서 군부의 검열을 받던 언론은

죽고, 다친 시민들을 외면하고

과잉진압을 보도하지않자 시민들의 항의로

건물이 방화되었다고해요.

실제, 1980년 5월 당시 광주가아닌 근교 지역에서도

이만큼의 희생이 있었는지

잘 몰랐었다고 할 정도였다합니다.

그만큼 고립되면서 힘든 싸움이었던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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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이 가장 치열했던

1980년 5월 21일

그때당시 석가탄신일 공휴일로

1시에 애국가가 울려퍼진 후, 공수부대의 집중사격으로

시민들에게 집단발포가 이루어졌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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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자

단순히 시위로 목소리낼게아닌

군인들로부터 무기로부터 시민들을 지켜야할

자위수단으로 인근 시.군 징겨에서

총과 탄약을 가져와 시민군을 편성하고

사격술을 실시하였습니다.

시민군편성지, 광주공원광장에서는

자연스레 지도부가 결성되어서

24일 도청으로 통합될떄가지 광주시내 순찰 및

차량등록 등 치안관련 업무도 함께보았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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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조선대 뒷산을 넘어 퇴각하여

주남마을에 주둔했던 계엄군은

광주-화순을 오가는 버스에 무차별 사격을 가해

1명의 승객만이 살아남았었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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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당한 2명은 주남마을 뒷산으로 끌고가

살해까지하여 5.18직후 주민의 신고로 발굴되어

광주시내뿐만아니라, 시외곽 변두리 지역에서도

5.18관련 아픈 역사가 많이 서려있습니다.

주남마을 뿐만아니라, 진월동.송암동에서는

계엄군간의 오인 사격 여파로 무차별 주민살상과

저수지에서 목욕하던 어린아이들에게도 총격을 가해

광주 곳곳에 희생자들이 발생하였던

5월 23일. 24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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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관은 5.18민주광장 안에 있는곳으로,

당시 희생자들의 주검을 임시안치했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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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항쟁지도부가 자주 옥내집회를 열었던 곳인데요,

5월 26일 계엄군의 무력진압을 막기위해

시민군에게 총기훈련 실시 및

항쟁이후에도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반독재,

반유신운동의 거점 등 수많은 집회가 열린 곳입니다.

5월 25일, 민주시민 범수모 궐기대회가 열리고

5월 26일, 계엄군은 점점 광주시내쪽으로 진출하고

학생수습위원회 윤상원 대변인은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을 브리핑하며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었습니다.

5월 26일, 계엄군이 오늘밤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며

공식발표하며 어린학생들과 여성들을 귀가조치하며

전남도청내에서 시민군들이 남아있었고

시내전화가 일제히 두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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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은 계엄령이 확대되었을때

이 곳에서 주둔하던 공수부대는,

5월 21일 집단발포로 희생을 치룬

광주시민들의 결의에 쫓겨

광주시외곽으로 철수하였다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싸운

시민군의 최후의 항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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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시내로 진압하면서

전남도청안의 시민군들

계엄군들의 최후의 격전이 시작됩니다.

시민군들의 무기는,

군부대의 전문적인 무기앞에서

잠시나마 시간을 벌였을 뿐..

본인들의 죽음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버텼던 518민주화운동 진행과정 중

마지막날인 5월 27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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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광장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상징적 장소라고 할 수 있는데요.

광주시민들이 가운대 분수대를 기점으로

각종 집회를 열어 항쟁의지를 불태웠던곳입니다.

이번 5.18진행과정을 상기시키며

관련된 사적지와 곳곳을 돌면서

저 역시도 새로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그때당시 저는 과연 저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당당하게 나도 맞서 싸웠겠다! 라는 말을

감히 못하겠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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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내 의견을 말하고 논할수있는

어떻게보면 숨쉬는것처럼 당연하게 느껴지는

민주주의인데, 이를 이루기위해서

많은 분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는데요,

아직 밝혀지지않은 진상규명과

역사왜곡으로 폄훼되고있는 5.18민중항쟁은

후배세대로서의 더 알아야하고,기억되어야하는

정신으로 다시금 마음먹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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