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제42주년 오월홍보단 오월이들입니다!
날씨가 따스해지다 못해 이제는 더워지기 시작했죠?
5월을 아직 한달 앞둔 4월임에도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 요즘인데 옷을 바꿔입어야겠더라구요
이번에ㅔ 오월홍보단이 소개해드릴 곳이 있어서
한번 그 역사적인 의의와 코스를 소개하려고하는데요
광주여행코스 전남대학교 민주길
전남대 안에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많은 의미있는
그 곳들을 한번 천천히 소개해보려고 해요!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산64-1
전화 : 062-530-5114
오시는 교통 편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유스퀘어 [신세계백화점 방면]
좌석02, 첨단30, 매월26, 상무64번 버스
[전남대] 버스정류장 하차 후
버스가 올라가는 방향으로 직진!

다들 이 전날이 날씨가 쌀쌀했기 때문에
옷들은 단단히 입고 왔는데 (저 또한 포함..)
우리가 만나는 이 날을 반기듯 햇볕이 강렬해서
오월이들 모두 그늘 아래 피해있으면서
민주길 코스를 돌기 전 담소를 나누며
그동안의 소식을 전하면서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죠

저희가 모였던 이 곳은 정남대학교 정문이었는데요
이 앞에는 사적 1호가 이렇게 우뚝 세워져 있었죠
조성 된지 1년 정도라서 아직 모르는 분들도 많은데
저도 평소에 자가용으로 지나치기만해서
'어? 언제 생겼지' 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이 비석은 그냥 세워져 있는게 아니라 그 의미가 있는데
민중항쟁이 있었던 장소마다 기념하여 만든 비석이죠
충장로 근처로 가시면 다양하게 만날 수 있죠

굉장히 부드러운 목소리와 이해하기 쉬운 역사의
그 흐름과 설명을 해주셨던 해설사 선생님이 오셔서
전남대학교 민주길의 코스 설명이 시작되었는데요

이 곳의 사적의 번호가 1번인거 보이시죠?
여기가 1번인 이유는 바로 518민중항쟁이 시작된
바로 그 역사적인 곳이기 때문에 1번이죠
전남대학교 내에는 총 11개의 사적지가 있는데
그 사적지들을 길로 연결했으면 어떨까해서
작년까지 그 길을 조성서 만들게 되었죠

코스는 크게 3가지가 있는데
정의의 길, 인권의 길, 민주의 길
그 중에서도 정의의 길을 한번 소개드리려고 해요!
그 전에 왜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느지
잘 모르시는 분도 있고 궁금하신 분도 있으시죠?
그 근원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이후
수 많은 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제대로 된 민주화의 열망이
컸던 우리나라 국민들의 마음이 컸었죠
그렇게 민주화를 기다리고 있던 중
전두환 정권이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집권하게 되면서
민주화의 봄으로 불리우고 서울의 봄이라고도 하는데
군부독재의 철수를 외치며 서울역에만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며 모이기도 했죠
그러나 군부 독재의 유혈사태가 걱정되었기 때문에
모두 자진 해산하게 되었지만 끝까지 남아서
항쟁을 했던게 바로 광주의 시민들이었었죠

5월 17일에서 18일로 넘어가는 0시에
계엄령이 전국으로 펼쳐지게 되었고
5월 18일 오전 전남대학교 앞을 막고 있었던 계엄군과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충돌하면서 민주화 운동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이 곳이 첫 시작지라고도 하며
중요한 사적지로서의 의미를 갖는 곳이죠

정문에서 들어오시면 코스의 시작으로
좌측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
박관현 언덕이라고 불리는 곳이죠
박관현 열사는 518민주화 운동 당시
전남대학교 총학생 회장이셨던 분이었다해요
78학번으로 법대생이셨던 분이셨죠
박관현 열사는 언변이 무척 뛰어나셨으며
민주화의 새벽 기관차라는 별명 또한 가지고 있으셨다해요

박관현 열사는 82년도에 감옥까지 들어가시게 되는데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정치범으로 끌려가셨고
518민중항쟁에 대한 진상 규명 등을 외치며
약 50여일 가까이 단식투쟁을하시게 되는데요
이렇게 민주화 운동을 펼치는 분이 감옥에서
변을 당하면 안되기 때문에 당시 정권에서는
단식 투쟁 중이셨던 박관현 열사에게
억지로 음식을 먹이게 되고 결국 갑작스럽게
음식물이 투입되어 쇼크사로 옥중에서 돌아가시게 되죠
그리고 그 죽음을 위해 부검한다는 명분 하에
시신을 훼손시켜서 그 증거를 없애버리죠

전남대학교를 들어오시면 보이는 이 가로수길 아시죠?
보통 메타세콰이어 길이라고 부르는 길이지만
이 길의 정식적인 명칭은 열사의 이름에서 가져온
관현로라고 불린다고 해요

그리고 이 곳의 옆에 위치한 이 오솔길을 따라가면
정의의 길 코스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는데요

양 옆의 풀숲으로 이루어진 길을 걸으며
흡사 등산하는 기분도 들고 좋은 공기와 함께
트래킹하는 느낌으로 걸어갈 수 있죠
돌계단을 올라서 걸어나오면 그 때부터 바닥의 사이에
문구가 적혀져 있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이 문구들이 적혔을 당시의 그 급박한 상황과
열망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서 코스를 걷게 되었죠

쭉 길을 따라 걸어오시다보면 발견 할 수 있는게
바로 윤상원 열사의 흉상을 볼 수 있는데요
마지막까지 구청에 남아 항쟁을 하셨던
시민군의 대변인 역할을 하셨던 분이죠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나왔던 김상경씨가
맡았던 역할이 바로 윤상원 열사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죠

은행원이라는 좋은 직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민주화 운동을 하는 동기, 후배들을 보고
나의 일신만을 위해 여기서 돈을 벌게 아니라
현장에 뛰어들어야겠다고 느껴서 그만두고
광주로 다시 돌아오시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패배할 것 입니다
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유명한 이 말을 남기신 분이 윤상원 열사이신데요
마지막날 도청에 남아있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 다는 것은 알지만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냥 단순히 기억한다는 것으로 끝내는게 아니라
그들이 외쳤던 구호를 문장으로만 남기는게 아닌
내가 그걸 어떻게 계승하고 실천해야할지를
생각하도록 해야겠죠

흉상 아래에 있는 이 돌들은 실제 윤상원 열사의
생가에서 직접 가져와서 쌓아올린 것이라 해요

다시 길을 쭉 걸어 올라오시다보면
붉은 지붕으로 된 인문대 건물을 보실 수 있는데요
당시에는 학교에도 경찰들이 많았다고 해요
유인물 하나를 배포하려고해도 경찰에게 잡혀갔던
그 시절이 불과 40여년 전의 일이죠
경찰들을 피해 저 경사진 지붕으로 올라가서
유인물을 배포하였던 역사가 남아있는게
바로 저 인문대 건물이라고 해요

광주여행코스 전남대학교 민주길에서
인문대학 1호관과 경영대학 사이에 오시면
전남대학교 인문대 출신이신 김남주 시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뜰을 찾을 수 있는데요
김남주 시인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문학 활동가로
교과서에서도 보셨던 기억이 있으실텐데요
신이 아니라 전사라고 불리울 정도로
평생에 걸쳐서 투쟁을 해오신 분이시죠

박정희 정권 당시 유신정권을 비판하다 탄압을 받았고
결국 감옥에 15년 형을 받고 가시면서
평생 500여 편이 넘는 시를 쓰셨는데
그 중에서 360여 편의 시를 옥중에서 쓰셨다해요
감옥에서 자유롭게 시를 쓰지 못하였으니
몰래 껌종이에 시를 써서 면회 오신 분들에게
전해주고 하셨다고 해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이라는 시가 이렇게 김남주 뜰에 만들어져 있죠

이어서 쭉 걸어 올라오시다보면 전대생들 사이에서
인벤이라고 불리는 인문대 벤치 옆에 위치한 곳인
교육지표마당인데요 이 곳은 대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의미가 담겨있는 곳이에요
78년도 박정희 정권 시절에 전남대학교에서
근무하셨던 교수님들에 대한 내용이 담긴 곳이죠

지도 교수라는 명목하게 학생들을 탄압하고 감시하는
비양심적인 교수들도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양심있는 교수님들이 우리의 교육지표라는 성명서를 내고
양심적인 교육을 진행하여야한다라고 발표하고
모두 잡혀가시게 되는 사건이죠

모양을 보시면 책이 다섯권이 있고
떡잎이 이렇게 피어있는데요 총 11개의 떡잎이 있는데
11명의 교수님들을 상징하는게 바로 이 떡잎이죠

교육지표마당에서 백색 건물인 백도를 향해서
걸어가시면 다음 코스인 벽화마당을 볼 수 있는데요

이 건물 자체는 사범대의 건물이구요
이 벽화는 518과 관련된 그림이 있는 벽화죠
전국적으로 이러한 역사적 현장들이 관련된
벽화가 그려진 대학교는 딱 4곳인데요
동아대, 전북대, 전남대, 경희대
이렇게 4곳만이 존재하구요
그 중에서도 518관련된 벽화는 이 곳이 유일하죠
10주년이었던 1990년에 이 그림은 그려졌는데
그림패 마당, 미술패 신바람, 사범대학교 미술교육과
이 세 곳이 힘을 합쳐서 그림을 그렸죠

주먹밥을 나누어주는 모습, 시민군들의 모습,
백두산 정상의 천지, 통일 선봉대 등의 모습을 볼 수 있죠
지금은 굉장히 깔끔하게 되어있는데
30여년이 넘게 흐르면서 지워지고 훼손되어
다시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해서 역사적인 이 현장을
계속해서 지켜나가고 있죠

벽화를 더 잘보이게 하기 위해서 백도 옆에
이렇게 다리로 만들어 놓은 공간이 있어서
이 벽화마당을 더 자세히 방해 받지 않고 볼 수 있어요

정의의 길 코스는 아니지만 추가로 설명을 해주신 곳이
518광장이라고 불리는 도서관본관인 백도 앞에 있는
장소인데요 예전에 선배들이 손가락을 단지를 해서
이 벽돌 아래 묻으면서 결의를 다졌던 장소기도 하죠

어느덧 정의의길 마지막 코스에 도착했는데요
바로 용봉열사 기억의 벽이라고도 하는 박승희 정원이죠
왼쪽부터 80년 당시의 학생 신분이셨던
김광석, 유영선, 서호빈, 이정연
항쟁 당시에 돌아가셨던 네분의 이름

그리고 그 옆의 박기순, 박관현, 윤상원, 장경희
열사까지 여덟분은 80년 5월 관련자이시고
그 다음부터 기혁 부터는 85년 이후
오월 정신을 계승해서 계속해서 민주화 활동을 펼치신
민족민주열사 분들의 성함이 이어져 있죠

마지막에는 의인의 벽으로 김신과 윤한덕이 있는데
김신은 전남대 94학번으로 물에 빠진 중학생 두명을
구하고 본인은 살아돌아오지 못하셨죠
그리고 윤한덕 선생님은 이국종 교수님께서
가장 애도하셨다는 분으로도 유명하죠
응급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애를 쓰셨는데
설 명절을 앞두고 본인의 집무실에서 엎드리신 채
숨지셔서 발견 되었죠
잠을 청하지 않고 계속해서 응급 의료 구축을 위해
일하셨던 분으로 유명한 분이죠
이렇게 광주여행코스 전남대학교 민주길
7개의 코스 투어가 마무리가 되었죠

코스를 설명하면서 이름이 언급 되었던 방승희 열사의
특별한 장소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설명을 들었는데요
당시에 청바지에 흰색 하이바를 착용한
곤봉을 들고 학생들을 탄압하던 백골단에 의해서
강경대 열사가 구타로 돌아가시게 되는데
이러한 죽음에 신문에 글 한줄 실리지 않는 현실에
분노한 박승희 열사는 전남대 1학생회관 뒷 편에서
유서를 남긴 채 분신을하고
노태우 정권 타도하라를 외치며 쓰러지시게 되었죠

목까지 다 타버려서 숨쉬는 것 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찾아오는 친구들과 간호사들을 더 걱정하셨던
박승희 열사라고 하는데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게 코스모스인데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곳에
코스모스를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시게 되죠
이 비석 바로 앞 편인 이 공간에
추모 공간이 곧 만들어 진다고하니까
5월 중에 다시 한번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슬픈 역사로 기억하고,
단지 패배한 역사로 남는게 아니라
이 열사들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가 있는 것이고
이 분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역사를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 시간이었죠
광주여행코스를 찾으신다면 역사적 의의가 있는
전남대학교 민주길 한번 여행하시는 것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