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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들 3기] 광주5.18여행 민중항쟁 사적지 아이와 함께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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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222-05-27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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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여행 민중항쟁 사적지 둘러보기

오늘 주말을 맞이하여 아이와 함께 5.18 사적지 투어를 했다. 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갈 것이 아니라 사적지 투어를 함께 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멀어질 사적지에 아이에게 소개해 주고 우리가 살고 있는 광주에 아픈 역사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전남대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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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 정문에서 5.18민중항쟁이 시작되었다 1980년 당시 정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지금은 복개된 용봉 천이 흐르고 있었고 그 위에 다리가 놓여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전남대 정문은 지금과는 달리 철제 대문이 있었는데 정문 오른쪽에 보면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 1980년 5월 17일 밤 12시, 권력을 갖게 된 신군부가 민주화 운동을 짓밟기 위해 비상계엄을 전국에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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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에 진을 치고 있던 계엄군이 학교 출입을 통제했고 이에 어이없어하던 학생들이 용봉교 다리에 서서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계엄군이 학생들을 때리고 짓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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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분노한 학생들이 전남대 정문과 후문 앞에 모여 계엄군과 싸웠다. 계엄군은 항쟁 기간 동안 끌고 온 시민들을 전남대 종합운동장과 이학부 건물에 가두고 폭행까지 했다. 그러한 가운데 죽음을 맞이한 시민들이 있었는데 그 주검이 학교 안에서 발굴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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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정문에는 5.18사적지 표지석과 기념 소공원이 있었다. 학교 안에도 윤상현 열사 기념 조형물과 임을 위한 행진곡 조각상, 5.18벽화 등의 작품도 관람할 수 있다. 5.18민중항쟁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전남대에서 5.18의 아픈 역사의 발자취를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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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역은 5.18민중항쟁 때 시민들이 광주역을 점령한 계엄군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다. 몸을 피한 전남대 학생들이 광주역 광장을 거쳐 금남로로 나가 시위를 벌였던 장소기도 하다. 1969년에 새로 지은 광주역은 1980년 당시 호남 지역의 교통의 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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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져 버린 분수대를 중심으로 광주역 광장에서 다섯개의 갈래 길이 도심을 향해 뻗어 있었다.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에게 쫓기던 학생들이 광주역 광장에 모여 대열을 가다듬고 시민들에게 계엄군의 잔인한 만행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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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도 함께 모여 광주역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그중 청년이었던 박상옥 씨가 버스를 몰고 돌진하다 계엄군의 총격에 분수대를 들이받고 끌려갔다. 이때 계엄군이 쏜 총격에 많은 시민들이 다치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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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시민들은 다시 이곳에서 밤을 새우며 싸웠다. 다음날 아침 이곳에서 주검 2구가 발견되었고 이 주검들을 태극기로 덮은 뒤 손수레에 실어 도청 앞 광장으로 모이게 된다.

농성 광장 격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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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1980년 5.18 민중항쟁 때인 5월 22일, 시내에서 쫓겨온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시민들을 공격하면서 인근 주택가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죄 없는 시민들이 희생당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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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시민 군이 이곳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계엄군에 맞서고 있을 때 시민 수습대책 위원들은 이곳을 넘나들며 상무대에 있던 계엄사를 방문해 협상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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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공원 안, 5.18 표지석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 그런 잔인한 일이 있었는지 사실 전혀 몰랐는데 오늘 사적지 투어를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장소다. 계엄군의 장갑차가 들이밀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시민들의 저항이 있었던 의미 깊은 사적지인 농성격전지를 기억하자.

무등경기장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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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경기장 정문은 5.18민중항쟁 때인 5월 20일, 운전기사들이 모여 시위를 시작했던 지점이다. 이곳은 80년 당시 무등경기장은 도청까지 지름길을 통해 빨리 갈 수 있는 지점이었고 많은 차량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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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을 목도한 운전기사들은 무등경기장 정문에 모여 시위를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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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에는 대형 버스들을 앞세웠고 전조등을 켠 뒤에 경적을 울려댔다. 대형을 유지하며 금남로로 나갔는데 이날 시위에 함께 한 버스와 택시가 약 200여 대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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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시위는 시민들에게 큰 힘을 보태주었고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수만 명의 시민들이 함께 금남로에 나가 계엄군의 만행을 규탄하며 시위할 수 있었다.

광주 동구 맛집 구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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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를 아이와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해가 느엿 느엿 질 무렵이 되었다. 배가 고프다는 아이와 함께 금남로 맛집 구수향에 들렸다. 세월이 느껴지는 오래된 맛집에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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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비빔밥 맛집인 이곳!!! 반찬들도 깔끔하고 맛있는 곳이다. 생고기 돌솥비빔밥과 된장국의 조합이 환상이었다. 후식으로 누룽지가 서비스로 나오니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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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오니 전일빌딩 245가 우리 모녀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광주 동구의 사적지는 다음번에 포스팅을 해볼 예정이다.) 5.18 사적지가 정말 먼 곳이 아니고 정말 우리 삶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람들이 정말 관심이 없으면 정말 더 이상 발전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갈 것이 아니라 사적지 투어를 함께 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아이 또한 광주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놀라워했고 마음 아파했다. 앞으로 시간이 허락한다면 아이와 함께 사적지를 자주 둘러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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