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들 2기] 광주가볼만한곳 오월의향길 학생독립운동코스 돌아보기
페이지 정보
본문
광주가볼만한곳 오월의향길 학생독립운동코스 돌아보기
안녕하세요. 6월도 이제 거의 끝이 나고 있네요.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잖아요. 저는 이번에 광주가볼만한 곳으로 오월길을 다녀왔어요.
오월길에는 오월인권길, 오월민중길, 오월의향길, 오월예술길, 오월남도길까지 크게 5가지로 나뉘어 있는데, 그 안에서도 또 다시 세분화되어 분리되어 있어요.
저는 그 중에서 오월의향길을 선택해서 다녀왔는데요. 그 중 학생독립운동코스를 저도 한 번 걸어 보았습니다.
http://518road.518.org/main.php
각각의 길이 궁금하신 분들은 방문해 보고 여정을 결정해 보는 것도 좋겠죠~
광주가볼만한곳 오월의향길 학생독립운동코스는 일제시대 자주성을 되찾으려 하던 피 끓는 학생들의 이동경로를 걷는 것으로 총 10.6km 예상소요 시간은 2시간 45분이지만, 실제로는 2~3번을 버스로 이동하고 나머지만 걸어도 10km은 넘고, 시간 역시 최소 4시간 정도는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특히 요즘 같이 더울 때는 중간에 점심도 먹고, 낮의 햇살이 너무 뜨거우니 커피도 한 잔씩 마시고 하다보면 하루를 통으로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제 이후로 가는 사람들은 시간은 여유롭게 잡는 것이 좋겠어요.
아무래도 각 코스를 그냥 찍고 오는 것이 아니라 각 유적지를 둘러 보기까지 한다면 말이죠.
오월의향길 학생독립운동코스
1. 나주역 ▶ 2.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 3. 구 구동공원<사적 20호> ▶ 4. 광주교 ▶ 5. 광주역 옛터 ▶ 6. 구 일본인 소학교 ▶ 7. 도청과 5.18민주광장 <사적 5-1호> ▶ 8. 부동교 ▶ 9. 구 광주고등보통학교
1번인 나주역은 광주 시내와 조금 떨어져 있어 제외하고 2번인 학생독립운동기념관으로 향했어요. 광주송정역에서 광주 1호선을 타고 이동하다가 첨단 20번을 이용하면 되는데, 근처에는 송암73, 운림 50, 금호 36 등이 지나갑니다.
내려서 이정표를 따라 쭉~~ 걸어가기만 하면 되니까 어렵지 않아요.
중간에 보이는 광주 학생동립운동기념회관이 보이는데, 이곳은 현재 도서관처럼 이용하고 있으니 그대로 지나쳐 더 걸어 올라가면 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회관을 지나쳐 조금 걸으면 태극기와 기념탑을 볼 수 있고.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랫쪽에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어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관람시간 : 09 : 00 ~ 18 : 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공휴일(일요일 제외) - 3.1절, 현충일, 광복절, 학생독립기념일 개관
관람료 : 무료
이곳은 일제시대 당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그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설립된 곳으로 1층과 2층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1층은 당시 독입운동에 앞선 이들의 명패를 모시고 있는 참배실이 있는데, 저는 먼저 2층을 관람한 후에 참배를 드릴 생각으로 이동했습니다.
당시 광주에는 광주지방법원 옆에 장새성의 빵집이 있었는데, 2층을 학생들 "독서회" 회원들의 비밀 회합장소로 이용되었었다고 해요.
광주 학생독립운동은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조선학생전위동맹, 신간회, 근우회 등 학생단체와 청년단체의 역할이 컸다고 하는군요.
1919년 3.1운동과 6.10 만세운동 이후 일제는 교육정책까지 바꾸는 탄압을 하였는데, 1929년 10, 30일 광주 ~ 나주간 통학 열차가 나주역에 도착하였을 때 일본인인 광주 중학생들이 광주여고부 학생들인 박기옥, 암성금자, 이광주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히롱한 것을 보고 광주고보생 박춘재(박기옥 사촌동생)가 이들과 다투게 되었고, 일본인 학생 50여명 대 한국인 학생 30여 명의 패 싸움으로 번졌어요.
한국 학생들이 수는 열세했지만 사기면에서 우수하니 일본 경찰들이 한국인 학생들만 구타하는 듯 편파적으로 해산시킨 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 11월 3일 광주 학생독립운동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11월 3일 이 학생의 날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네요.
당시 희생당하신 분들을 모셔 두고 있는 1층에 내려와 묵념과 참배 후, 향을 올린 뒤 밖으로 나왔습니다.
11월 3일을 의미하는 113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돌계단을 하나 하나 올라가다보면, 39미터 길이의 학생독립운동 기념탑을 볼 수 있는데요.
양 옆에는 청년학생들이 항거하고 투쟁하는 모습의 군상들과 부조들을 볼 수 있어요.
일제에 항거하고 민족정신을 되찾기 위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죠.
그 다음 장소인 구 구동공원으로 이동하였는데, 이 때는 거기가 좀 있으니 버스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구동공원으로 검색하면 광주공원이 나오더라고요. 전에도 방문했었던 이 곳인데, 네이버지도에 구동공원으로 검색해도 광주공원이 나옵니다.
광주공원
광주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영업 시간
매일 00:00 - 24:00
문의 062-672-0660
이 곳은 5.18 당시의 사적지 20호로 1980년 5월 계엄군의 발포로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니 계엄군에 맞서 시민군을 편성하고 훈련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광주신사는 1912년부터 만들어졌는데, 1,200평 규모의 건립된 광주신사로 올라가는 계단이었어요. 일제는 신사를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 세워 조선인들을 강제로 참배하게 하였지요.
1940년 조선총독부가 신사 운영비를 부담하는 국폐신사로 격상되며 올라가는 계단이 정비되고 중앙광장이 확대되었는데, 광복을 맞이하자마자, 광주시민들은 정상에 위치한 신사를 파괴하였던 것이죠. 하지만, 입구의 계단과 현충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2019년 3.1운동 및 대한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 90주년을 맞이해, 이 계단들이 일제 식민 통치의 잔재물임을 알려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있어요.
11월 3일 일본 일왕의 생일 기념행사에서 기미가요를 제창하게끔 하였지만, 광주의 학생들은 침묵으로 거부하였고, 신사참배 역시 거부하였고, 이후 충돌은 당연한 일이었겠죠.
학생들은 친일언론사인 광주일보사로 몰려가 인쇄기에 모래를 뿌리고, 밖으로 나가 조선어교육을 실시하고 일본인 교사를 물러나라며 외쳤다고 합니다.
그러한 계단을 오르고 오르면 보이는 것이 광주의 현충사입니다.
이곳은 과거 성거산이라 불렸고, 현충시설이 있는 이곳에 그 당시에는 광주신사가 있었던 것인데, 다 때려 부신 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위한 현충탑으로 탈바꿈한 것으로도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켠에는 위패봉안소가 있는데,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히 참배 후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 합니다.
지난 봄에 왔을 때 보다도 더욱 녹음이 푸르른 느낌인데요. 과거에는 많은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있던 광주 공원이지만, 지금은 한가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산책하며 여유를 즐기기에도 적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를 기억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광주공원을 빙~ 둘러 산책하다보면 광주공원 비군을 볼 수 있어요. 영세불망비라고 불린다고 하는데요. 광주공원의 특징은 바로!
이렇게 눕혀 버린 세 개의 비석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비석들은 모두 우떡 세워져 있는데, 왜 이 세 개의 비석만 눕혀 있는 것일까 하고 내용을 확인하면,
세 명 모두 일제 국권침탈의 협력자로 단죄문을 적어 기억하게끔한 것이죠. 모두 깨부시지 않은 것만 해도 그들은 고마울 듯. ㅡㅡ
윤웅렬 - 전라남도 관찰사로 경술국치 이후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에서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사망 이후 아들 윤치호가 물려 받음
이근호 -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 윤웅렬 뒤를 이은 전라남도 관찰사. 경술국치 이후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에 앞장 선 공로로 남작작위를 받음
홍난유 - 전라남도 관찰사 서리.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에 기여한 공로로 경술국치 이후에 광주 군수에 오름. 의병을 진압하기 위한 일본의 ' 남한대토벌작전'에 앞장 섬
올라가는 길에 친일인물 3인의 단죄문이 있다는 안내와 올라가면 그들의 행적이 적힌 단죄문으로 다시금 그들의 죄를 낱낱히 밝히고 있는 광주광역시! 정말 칭찬할 법하죠?
이제 광주교로 넘어가 봅니다.
1907년 당시에는 징검다리와 나무다리로 만들어져 있던 곳으로 당시 광주시내와 광주신사를 연결하는 교량의 역할을 하던 곳이죠.
지금은 꽃향기 가득한 아트정원을 만들어 시민들의 포토존으로, 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식의 공간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데, 빨간머리 앤과 그 친구인 다이애나의 그림자도 만날 수 있어요. ^^
지나는 길만으로도 운치 있는 광주교, 당시에는 저 건너에 광주신사가 보였을테니 오랜기간 아픔의 장소였겠습니다...
어느덧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추천받은 맛집을 방문했는데, 이 곳은 벌써 3번째 실패여요. 오늘도... 실패. 크흑...
대신 구 광주역으로 가는 길 금남로에 위치한 금남분식을 들렀습니다.
그런데... 식사류 가격 실화인가요? 서울에서 절대 만날 수 없는 가격 아닌가요? ㄷㄷ
더운 날엔 이열치열이라고 과감하게 뼈해장국을 주문해 보았습니다.
가격에 비해 상당히 잘 나오는데, 이 집... 무엇보다 김치가 진~ 짜 맛있더라고요.
광주는 어딜 방문해도 맛집이라더니... 다음에 기회되면 김치찌개로 선택해야겠다 생각했다죠. ㅋ
광주역 옛터에 왔습니다. 현재는 광주 동부소방서가 위치한 곳으로 과거에는 이 곳과 일대가 광주역이었고,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났을 때 대규모 한·일 학생간의 충돌과 시위가 이곳에서 일어 났었다고 해요.
흔적을 찾아 보고자 근처를 돌아다녀 보았는데, 저만 안 보이는지 찾을 수 없더군요. 대신 현재는 소방서로 바뀌어 있기에 바쁜 119 소방관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갖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 봅니다.
이제 6번째 장소인 구 일본인 소학교로 이동하는 길인데, 가는 길에 딱! 보아도 오래되었겠구나... 하는 느낌의 이발관이 눈에 들어와서 찎어 보았어요. ㅎㅎ
학교 주변 담의 담쟁이 넝쿨이 꽤나 인상적이었어요.
1907년 일본인 학생들을 위해 설립된 광주심상고등소학교. 허락받아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왔는데요.
1929년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충장로를 지나 서석동으로 향했는데, 당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가두시위 경로로 이용되었다고 해요.
지금은 광주 중앙초등학교가 되어 그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7번째 장소인 (구) 전남도청으로 이동 중 햇살에 너무 지치더라고요. 이럴 때는 차가운 커피 한 모금이 도움이 되죠.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은 카페라서 그런지 깔끔하고 여유도 있어 잠시간의 여유를 가지며 오늘 돌아보며 찍은 사진을 하나씩 들여다 보며 잠시 휴식을 취했답니다.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구) 광주역에서 충돌 후 시가행진이 진행되었는데요. 일제의 거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던 광주시민들의 강인한 정신력이 1980년의 5월 18일에도 빛을 발했던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최근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 광주를 자주 만나고 있고, 더 많이 알아가고 있는 중이지만, 매번 알면 알수록 강인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고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1929년 11월 3일의 학생들이 걸었다고 하는 학생독립운동코스로 걷다보니 부동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910년에 만들어진 다리로 광주의 불로동과 남구 사동을 잇고 있는 다리예요.
이 부동교를 건너 광주천을 따라 내려가다가 광주교를 건너 광주고보로 되돌아왔다고 하는데요. 이 곳에서 수 천명의 인파가 만세시위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한참을 걷다보니 지금은 덥지만, 해가 떨어지면 나름 선선한 지금도 걷는 것이 이렇게 힘든데, 1929년 11월 3일 꽤 추운 날 이 기나긴 거리를 걷고 걸어 학생독립운동을 하면서 걸었을 이 길들이 또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당시의 학생들은 일본 학생들이 다니고 있던 광주중학교를 습격하려 했지만, 경찰의 제지로 부동교를 건너 걷다가 이 광주교를 다시 건너와 광주고보로 향했다고 하는데요.
제가 방문한 곳은 광주제일고등학교 후문으로 갔지만, 정문을 찾다 한바퀴를 뺑 돌아 버렸네요.
일대를 한 바퀴 뱅~~ 돌아 광주제일고등학교 정문으로 들어왔습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상지 1호로 당시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였지요.
야구로도 유명한지 야구연습이 한창이었는데, 왼편에는 1954년 세운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1997년 건립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이 있답니다.
1979년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 26로호 지정된 이곳은 광주학생운동발상지임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광주제일고등학교와 전남여자고등학교 교정부지의 일부를 정했다고 합니다.
무자비한 일제의 압박과 학정에 의연히 항거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조국 광복을 염원하며 그 고기 한비 로 이 땅을 물들이던 1929년 11월 3일 피 끓는 애국심이 방패 가 되고 불타는 정의감이 횃불이 되어온 민족의 진두에서 독립을 포효하던 새 역사의 창조자 젊은 학도들의 거룩한 위업을 길이 빛내고 그 얼을 영원히 이어받고자 온 국민의 열화와 같은 정성을 모아 1953년 11월 3일이 탑을 세우다.
이렇게 1929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선조들이 걸었던 길을 순례하듯 저도 함께 걸어 보았는데요.
지금과 같은 신발도 아니었을진데, 그 길고긴 길을 걷고 걸으며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을 외쳤을 조상님들께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하루였습니다.
저는 꽤나 좋은 신발이었는데, 약 11km를 걷고 물집이 잔뜩 잡힌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다보니 더욱 느껴지더군요.
광주 가볼만한곳을 찾고 있다면 오월의향길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 보시는 건 어떨까요?
- 이전글[오월이들 2기] 518 민주화운동 체험순례 오월을 걷자! 학생독립운동 코스 오월의향길 21.07.14
- 다음글[오월이들 2기] 전남 광주여행 오월민중길 시민군 코스를 다녀오다 21.07.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