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들 2기] 518 민주화운동 체험순례 오월을 걷자! 학생독립운동 코스 오월의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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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유형별 518사적지를 통해 내가 원하는 답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의병항쟁 1코스와 2코스, 학생독립운동코스, 4.19혁명 코스 중 이웃님들이 원하는 오월의향길을 선택해보세요. 제가 선택한 코스는 자주성을 되찾으려 했던 "피 끓는 학생들을 만나는 길"입니다. 총거리는 약 10km이고 소요시간은 약 3시간입니다. 참고로 구 나주역 코스를 제외한 시간이기 때문에 나주역까지 방문을 하시고 싶은 분들은 2시간을 추가해 주셔야 합니다.
구 나주역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의 충돌이 심하게 진행되었던 장소입니다. 11.3학생독립운동을 촉발시켰던 장소로 한국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던 공간입니다. 1929년 광주로 통학했던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들이 충돌하면서 11.3학생독립운동은 촉발됩니다.
나주 학생들이 일본인 학생들과 직접 맞붙게 된 배경에는 당시 영산포에 거점을 둔 일본인들이 나주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 가고, 읍내의 상권 또한 일본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식민지 나주의 가슴 아픈 현실이 있었습니다. 현재 이곳은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나주역의 옛 풍경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나주역 바로 옆에는 나주학생독립운동 기념관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나주학생독립 운동관은 국내에서 전개된 3대 독립운동 중 나주에서 진행되었던 사건을 상세하게 전시해 두고 있습니다. 참고로 3.1운동, 6.10만 세 운동, 나주학생독립운동은 시대를 초월한 청년정신의 산실이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독립운동입니다. 학생독립운동은 1945년 8.15해방과 함께 역사의 장으로 넘어갔지만 그들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현재까지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518 민주화운동 체험순례 오월을 걷자
학생독립운동 코스 오월의향길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역사와 애국심을 배울 수 있는 장소입니다. 113개의 계단을 올라서야 만날 수 있는 기념탑은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줍니다. 1967년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에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을 설립하여 독립정신을 선양하면서 기념관의 중요성을 알리게 됩니다.
2004년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 기념관을 신축하게 되고 선배들의 숭고한 얼을 이어받을 수 있는 배움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전개 과정을 입체적으로 복합 전시를 연출하고 있고 2005년 11월 새롭게 문을 열어 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체험순례 오월을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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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구동공원(현 광주공원)
광주 최초의 근대 공원인 구동공원은 1912~1913년 9.600평의 성거산 정상에 조성하였습니다. 그리고 광장에는 1,200평의 광주 신사가 들어서 있습니다. 1929년 11월 3일은 일본 메이지 왕의 탄신일이자 음력 10월 3일 개천절이기도 합니다. 개천절 날 일본 명절을 축하해야 하는 현실에 학생들은 기미 가요제창을 거부하였고 침묵으로 그들에게 저항하였습니다.
신사참배도 거부하자 조선학생과 일본 학생의 충돌은 싸움으로 이어졌고 조선학생 최상현의 얼굴을 단도로 코와 안면을 찌르면서 폭력사태는 확산되었습니다. 동료가 당하는 것을 보고 분개했던 한국인 학생들은 일본인 학생들을 쫓아가 구타를 하게 되고 양 학교 간의 대대적인 대치가 벌어지게 됩니다.
이날 오후 사태가 소강된 이후 광주 보통고득학교 학생들은 가두시위를 결행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날의 가두시위를 기점으로 학생 항일운동은 전국적으로 빠르게 퍼져나갑니다. 매년 11월 3일 충장로에서 이날을 기리기 위한 재연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이유도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광주교
광주시민들에게는 장터가는 길로 이용되었지만 일본인들에게는 광주공원 안에 조성되어있는 신사 가는 길로 이용되었습니다. 장터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지만 징검다리 형태로 어설프게 만들어져 있던 나무다리가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광주교는 현재 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안전하게 광주시민들이 건널 수 있는 또다른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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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역 옛 터(현 동부 소방서)
학생들은 신사참배를 하고 돌아오던 광주중의 일본인 학생들과 광주천에서 충돌하게 됩니다. 그리고 광주 역전까지 추격을 당하게 됩니다. 목검과 일본도 등으로 무장한 일본 광주중학교 학생 수백 명은 광주고보생과 농업 교생들이 합세하여 격돌하게 됩니다. 300여 명의 학생들은 "조선 독립 만세". "일본제국주의 타도", "식민지 교육 철폐" 등의 구호와 노래를 부르면서 시민들과 추가적으로 합세를 했던 장소입니다.
구 일본인 소학교(현 중앙초등학교)
이곳은 일본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1907년 설립된 광주심상고등소학교 입니다. 1913년에 교사를 준공하여 지금의 중앙초등학교 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광주학생운동의 가두시위 경로로 이용되었으며 1929년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충장로를 지나 서석동까지 이르게 됩니다. 일반 시민과 시위 대열에 학생들은 합세하게 되고 3만 명에 이르는 시위대 규모를 갖추게 됩니다.
도청과 5.18민주광장
1월 3일 광주역에서의 격돌이 발생하고 난 후, 오후 2시에 시가행진이 다시 시작됩니다. 시가지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은 "조선 독립만세"를 외치고 애국가를 부르며 기세를 높이게 됩니다. 충장로를 따라 시위하던 학생들은 광주중학교가 있는 계림동을 향해 행진합니다. "식민지 노예 교육을 철폐하라"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을 폐쇄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나아갔으나, 경찰의 강력한 방어에 서석동을 돌아 다시 시가지로 나오게 됩니다. 전남도청의 남쪽 학원가 골목과 전대병원 가는 일방도로를 따라 행진은 계속 이어졌고 그들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부동교
518 민주화운동 체험순례 오월을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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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광주고등보통학교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상지 1호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독립의지를 키우고 광주에서 항일 시위를 주도하여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학교로서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는 지금의 광주 제일고등학교입니다. 교내에 마련된 공원 부지에는 당시의 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여 1954년에 세운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1997년에 건립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1979년 4월 30일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학교 교정 기념관에는 1923년 창단된 광주 일고 야구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체험순례 오월을 걷자
학생독립운동 코스 오월의향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광주의 이미지는 "민주화운동"입니다. 수차례에 걸쳐 영화와 소설의 형태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고 광주에 소재한 수많은 기념관과 기록물이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광주의 역사는 1980년 5월 18일에 한정돼 있지 않습니다. 광주를 포함한 호남 지방은 가장 맹렬한 항일 풍조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1929년 나주에서 시작해서 광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진행된 독립운은 아직도 광주 민주화운동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광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518 민주화운동 체험순례 오월의향길을 꼭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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