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518전시 - 오월 어머니, 그 트라우마/ 아사히신문 특별전

안녕하세요. 오늘은 끝나지 않은 오월이야기를 해 볼까 해요.
1980년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오월홍보단의 활동을 하면서 더 많이 알아가고 있는데요.
광주518전시 도 다양하게 열리고 있어서 상황을 알리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되는 듯합니다.
오늘은 그와 관련한 전시 2곳을 보여 드릴까 해요.
지난 유튜브 영상에서 전일빌딩245의 9층에서 김은주 사진전인 오월 어머니, 그 트라우마가 전시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오늘은 그 전시회를 조금 더 꼼꼼히 보고 왔답니다. 그리고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의 3층에서 진행 중인 아사히신문 특별전까지 보고 오면 조금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싶어요.
두 전시 모두 무료니까 광주 금남로에 가신다면 꼭 한 번 들러 주시면 좋겠어요.

이번 광주 518전시 '오월어머니, 그 트라우마' 김은주 사진전은 지난 1980년 5.18 당시 직접 고초를 겪으신 분들 혹은 가족을 잃으신 분들이 각각의 의미 있는 장소에서 사진을 촬영하셨어요.
의미 있는 장소라고는 하지만, 사실.. 자식을 잃은 장소이고, 남편을 떠나보낸 장소이며, 본인이 고초를 겪었던 장소이기 때문에 그곳에 가는 것마저 많이 힘들고 아프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 쓰는데도 눈물이...ㅠㅠ
이사람을 보라 <오월어머니, 그 트라우마>
기간: 2022년 3월 25일~10월 14일
전시장소: 전일빌딩245 9층 기획전시실
요금 :무료
이 사진들 속의 사연을 한 번 하나하나 뜯어 살펴보죠.
오월 어머니, 그 트라우마의 사진은 아주 많지는 않습니다. 제가 말한 것처럼 힘들어서 사진을 남기지 못한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찌보면 덤덤하게, 어찌보면 애닮은 표정으로, 또 어찌보면 견뎌내고 있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는데요.
5.18 엄청난 일들이 있었던 그 장소에 다시 가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그곳에서 얼마나 아들을, 남편을, 부모를, 형제를 그리워하셨을까요?

이곳은 바로 금남로입니다.
모델은 박순금 어머니
살레시오고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 백두선님이 학교를 다녀오다가 도청 부근에서 총상을 당했고, 후유증으로 1995년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하.... 총상....... ㅡㅡ

(구)전남도청 앞의 이귀임 님- 남편 윤영규님은 1980년 당시 광주 YMCA의 이사면서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의 교사였다고 해요.
5.18 당시 수습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다가 구속되었다고 하네요.

산수 1동의 임기영 님 - 1980년 5월 18일 12시경, 전남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아들 정태기님은 친구와 도청앞을 지나가다 상무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이후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망월동 묘역 1-1 임근단 님
5월 18일 오후 4시, 아들 김경철님은 국제양화점에 근무하던 중 학생으로 오인한 계엄군의 곤봉에 맞아 사망했고, 첫번째 희생자였어요.

본총동 외촌부락의 이영순 님
1980년 5우러 24일, 밭에서 일하던 시어머니 김천례님이 다리에 총을 맞고 과다출혈이 있었고 고통에 시달리다 1982년 10월에 사망하셨다고 해요.

유동 수착초등학교 앞의 이종희 님
아들인 조성환님은 5월 27 새벽 다리에 총상을 당하고 헌병대에 잡혀가서 고문을 당했어요. 총을 맞은 다리에 염증이 생겨 썩고 고름이 나와 통합병원으로 보내졌다고 하는군요.
학동삼거리의 윤삼례 님
북동의 최정아 님
(구)광주여고의 정덕순 님
화순너릿재의 김점례 님
(구)전남도청안의 나순희 님
금남로의 임현서 님
광주교도소의 박유덕 님
광주기독병원의 안성례 님
(구)전남도청 분수대의 이점례 님
(구)전남도청의 노영숙님
(구)전남도청 분수대의 이경희님
(구)전남도청 광장의 전옥주님
소름 돋는 성고문까지 당하셨다는 글을 보고 소름까지 돋더군요. ㅠㅠ
전옥주님은 작년에 유명을 달리하셨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망월동 묘역의 김길자 님
광주교도소의 이명자 님
용산동 옛집 앞의 김옥희 님
남광주시장의 문연애 님
조선대 병원 응급실 앞의 정정희 님
(구)전남도청의 한양님 님
학동삼거리, 복동, 광주여고, 화순 너릿재부근, 광주교도소, 용산동, 남광주시장 등에서 총성이, 폭행이 벌어졌고, 어머니들은 자식을, 남편을, 우리나라 계엄군의 손에 잃으셨어요.
특히 남광주 시장 앞의 문연애 어머니는 당시 총상을 당한 2004년 남편분도 사망했고, 본인도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2018년 11월에 돌아가셨어요.
총상을 당하고, 머리가 깨지고, 전신을 구타당하고, 고문당하고, 수감되고..
대체 어떤 잘못을 했기에 이런 고통을 당해야 했을까... 몸은 어찌저찌 낫는다고 해도 정신적인 고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올 수밖에 없어요.
옛국군광주통합병원의 이추자 님
옛국군광주통합병원의 홍순용 님
옛국군광주통합병원의 이남순 님
임신 3개월의 주부였던 이추자어머니는 화정동 2층의 주택에서 총을 맞고 통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조사를 받다가 데모하는 여대생으로 오인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고 해요.
YWCA주방에서 계엄군의 대검에 생식기를 찔리셨다는 이남순 어머니.
치료가 끝나기도 전에 광산경찰서와 상무대에 구금되어 조사를 받았고 석방 후 미국으로 도피하셨지만,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로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고 하는군요.
옛국군광주통합병원의 김태수 님, 진흥권 님, 이민오 님
옛국군광주통합병원의 이성순 님, 신경진 님, 임주윤 님까지.
정말 많고 소름 돋는 사연들이 가득하지만, 내용은 직접 가셔서 확인하셨으면 좋겠어요.
그저 그런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은 역사가 되었고, 더 이상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5.18의 숭고한 가치를 모두가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사진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체적인 공간들을 확인하는 것도 좋지만, 어머니들의 표정에서 주는 울림이 있는 것 같아 한 분 한 분의 사진에서 얼굴을 조금 더 클로즈업해 봤어요.
올 10월까지 열리는 광주 518전시 - 이 사람을 보라 <오월어머니, 그 트라우마> 꼭 가보셨으면 합니다.

같은 공간 안의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는데요.
오일팔 사진관이 바깥으로 이동하고, 내부가 상당히 귀여워졌어요.

정말 누가 만들었을까요? 메이팝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의 뜨거운 열기를 전하기 위해 나타난 캐릭터 메이팝 MAYPOP으로 이팝나무의 꽃잎을 지니고 있다고 해요.
우울하고 슬픈 모습들을 보아서 마음이 쓰렸다면 메이팝과 함께 사진 찍으며 조금 기분을 돌리는 것도 추천합니다.
물론 전일빌딩 245의 상시 전시도 잊지 마세요~

이번에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으로 이동해 볼께요.
이곳에는 518여행을 하면서 꼭 들러서 그 기록과 증거들을 확인하고 오는 것을 추천하는 곳이죠.
당연히 상설전시가 있으니까 꼭 들러 주세요.

오늘은 5.18민주화운동기록관 3층에서 열리는 광주518전시
518민주화운동 아사히신문 미공개 컬렉션 특별전을 방문해 보겠습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
운영시간
매일 09:00 ~ 18:00
문화해설시간 10시, 11시, 14시, 15시, 16 : 30분
문의 전화 062-613-8204

이번 전시는 518 42주년을 기념해 준비된 전시회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아사히신문사의 컬렉션으로 또 다른 시각의 당시상황을 볼 수 있어 꽤 값진 전시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일 먼저 불타는 홀로그램을 볼 수 있었는데요.
이곳은 광주 MBC입니다.
계엄군의 잔인한 폭력은 은폐하고 오히려 광주시민과 학생들을 불순분자로 방송을 내보는 것에 화가 난 시민들의 방화로 전소되었답니다.
1980년 5월 20일의 일이예요.
금남로의 버스 시위와 전남대 병원 안의 당시 상황도 볼 수 있어요.

방독면을 쓰고 소총과 곤봉을 들고 집결해 있는 계엄군들
당시의 상황을 한눈에도 볼 수 있는 버스 앞 유리의 총탄과 불에 탄 버스
이게 우리나라 시민에게 우리나라 공권력이 행한 일이었습니다.
너무 멀쩡한 시내에 군인들이 집결하고, 탱크와 장갑차가 지나는 모습은 그냥 봐도 무섭지만, 일제를 겪고, 전쟁을 이미 겪으신 분들은 얼마나 더 소름 돋고 무서웠을까요?
흑백의 사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컬러로 된 사진도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모두 생생하게 볼 수 있더군요.

작은 모니터 안에서 당시의 사진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아사히 신문에 보도되었던 내용들을 그대로 볼 수 있네요.
이것만 봐도 당시의 상황들이 얼마나 긴박하고 심각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시신이 놓여 있는 모습의 현장과 28일의 시내까지의 사진도 공개되었네요.
당시 한국에 와서 촬영을 했던 아오이 카츠오 기자의 신분증과 카메라도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분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이, 그나마 서양인이라면 누가 봐도 티가 나니까 감히 건드리지 못했을 텐데 동양인이라면 잘못 끌려가 고초를 당할 수도 있었을 텐데 용감하게 광주에서 활동하셨다는 점이예요.